마더피스 타로로 읽는 지금 _0. Fool
막 서른이 되던 때 영화를 한편 봤다. 이십 대의 순간들은 찬란했고 가혹할 정도의 고통이 함께 있었다. 스물아홉에는 지긋지긋한 이십대라고 이를 꽉 물기도. 그렇게 떠밀듯 밀어낸 젊음에게 요즘 많이 사과한다. 힘들었는데 보듬어주지 못해서.
삼십 대를 맞이하고 심드렁해진 얼굴로 혼자 쏘다닌 곳이 극장이었다. 큰돈 들이지 않고 숨어있기 좋았고 나 자신이 지워지는 곳이라. 그때 만난 영화가 '모노노케 히메'이다. 혼자 보고 걸으면서 엄청 가슴 떨려서 울던 기억이 난다. 정확하게 어느 포인트였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하긴 이십여 년의 세월에 살아남은 기억이 얼마나 되겠나.
지난 주말, 마더피스 타로 토요일 모임하는 친구들과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올라온 친구는 어제 모노노케 히메를 봤다며 큰 화면으로 만난 영화가 준 감동을 전했다. 그녀의 말이 마음을 건드렸는지 일요일에 재개봉한 '모노노케 히메'를 다시 봤다. 막 청춘을 끝낸 내가 느낀 전율의 포인트는 '살아있으니'였구나 바로 알았다. 무너진 탑, 무너진 마을, 무너진 공장, 사라진 신과 망가진 숲을 보면서도 인간들은 각자 살아있으면 된다고 위로하고 다시 만나자 약속한다. 서른의 나에게는 그 포인트에서 주저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만날 수 없이 영영 이 세상을 뜬 사람은 어떡하냐고, 그래도 살아있으니 살자라고 마음을 먹어야 했을 것.
세월을 건너온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만났다. '살아있으니까' 재앙신이 인간에게 남긴 저주 같구나 싶다. 사슴신, 자연 그 자체를 해쳐놓고 다시 복원하고 치유할 기회를 인간은 잃어버렸구나. 사슴신의 머리를 돌려드리지 못했다. 살아서 저주의 무늬가 커지고 썩는 것을 보며 고통에 몸부림치겠지. 예언서를 보는 것 같았다.
또 하나는 끝끝내 개발과 전쟁을 멈추려 뛰어드는 아시타카와 모노노케 히메의 뒷모습에 지코 스님이 "바보네, 바로를 어떻게 이겨"라고 돌아서며 자신의 실패를 삼킨다.
나도 모르게 응답하듯 중얼거렸다.
"당연하지, 바보를 이길 순 없지."
마더피스 타로 카드의 시작은 1이 아니다.
0번. 카오스이자 혼돈 속에서 깨어난 충동, 혼란, 형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태 그 자체이다. 온전하게, 분열되기 전 정신으로 무한 가능성의 사건들 사이 속 동시성과 우연성이다. 바보는 그냥 일어난 사건들 사이의 맥락이나 연관성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고 남의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본능적인 무의식과 끌림, 즐거움을 따라 움직이는 바보는 남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가서 부딪히는 느끼고 선택하고.
"진실한 눈으로 보고 선택한다."는 아시타카의 선택 같은.
타로 카드의 바보는 물구나무서서 놀이처럼 강을 따라 걷는 여자아이로 표현하였다. 발끝 지팡이에 걸린 가방에는 '집단 무위식' 혹은 '원형'들이 담겨있고 눈은 떴으나 아직 열리지 않았다. 가방이 열리는 날 바보의 여행을 스스로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상을 거꾸로 보며 다양하게, 창조적으로 구경하는 아이는 지금 삶이 놀이와 같다. 그런 그녀를 여신 마트의 독수리가 보호하고 있다. 바보의 곁에 오로지 직관으로 사는 솔방울만 한 뇌를 가진 악어가 제3의 눈, 잠재력의 본능적 무의식 상태임을 드러낸다. 고양이는 바보의 친구이자 마녀의 '파밀리아'이자 길동무로서 삶을 나눈다.
바보의 여행은 사랑의 감수성으로 가득 찬 분홍산 꼭대기 눈이 녹아내리며 강으로 가는 길을 따라간다. 강에는 지혜의 빛, 7 차크라의 상징인 연꽃이 피어있다. 아이의 신성한 놀이는 여신의 지혜로 향하고 있다.
가볍고도 즐거운 여행을 하는 바보카드는 삶이 가볍지 않은 나의 동경이다. 바보가 나오면 결과가 어쨌든 나는 신난다. 드물게 나를 찾아오는 바보에게 올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살면서 위험(독버섯처럼)과 마주하고 갈등과 상실이 주는 나락을 알기에 선택하기 어렵다. 실패 위에 다시 일어서는 두려움이 얼마나 큰 위협인지 아는 어른이라면 더더욱 바보를 밀어낸다.
늘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삶이라면 때때로 위험을 감수하는 놀이를 해야 몸으로 지혜를 배우고 성장하는데 몇 번의 실패의 경험은 과감하게 바보가 되기를 막는다.
큰 결심을 하고 새로운 작업,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안전보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바보의 놀이와 정신이 필요하다. 창조성과 상상력이 혼돈과 카오스 속에서 반짝이며 올라온다. 내가 계획한 그 이상의 과정과 결과를 선물로 주며, 인내하고 받아들인 사람은 성숙해지고 나무가 풍성해진다.
마치 황제와 교황처럼 내가 계획한 일을 전쟁처럼 한다면 내면의 결핍이 채워지지 않고 타인을 굴종시킬 것이다. 긴장이 클수록, 목표가 높을수록 종종 바보가 되어야 한다. 바보를 장착하면 다름을 수용한 '알 수없고' '예측할 수 없음'이 아름다운 결과를 선물할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처음의 두려움으로 쪼그라들지 않고 즐거움으로 쭉 펴진다. 짜릿한 두려움을 이기고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같은 세상의 다른 풍경이 내 앞에 있다.
무기로 무장한 황제는 벌거벗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노는 바보를 이길 수 없다. 바보는 이길 마음이 1도 없기 때문에 황제의 무거움을 갖고 놀아버린다. 왜 그래, 왜 팔을 꼬고 앉는 거야. 혼자 단상 위에서 뭐 하니. 일루 와봐 팔을 풀고 다리도 풀고 물속에 잠겨봐, 되게 재밌다.
그리고 손을 내민다. 같이 놀자!
경계가 없고 두려움이 없는 바보를 더 가까이하는 하루가 되시길.
2025년 9월 22일
사슴신의 머리를 돌려놓지는 못하지만 살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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