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 생각하는 일의 본질
세계 23개국을 대상으로 직업별 신뢰도를 조사했더니 가장 믿을만한 직업 1위는 과학자, 가장 못 믿을 직업인은 정치인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조사 대상 국가에서 평균 60%의 사람들이 과학자를 신뢰할 수 직업이라고 정치인은 9%만이 신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 사람들도 과학자를 가장 신뢰하는 직업인(42%)으로 꼽았고, 8%만이 정치인을 신뢰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대답했다. 가장 믿을만한 직업인으로 과학자를 꼽은 이유는 뭘까? 칼 세이건은 과학은 지식의 총합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과학자의 사고방식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객관성이니, 과학자의 객관적 태도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직업으로 꼽은 큰 이유로 작용한 듯하다. 객관성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란 어렵지만,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데 객관성이 도움되는 건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믿음과 객관성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 과학에서의 객관성이 무엇인지 알면 일상의 생각과 정보가 얼마나 믿을만한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과학에서의 객관적 태도란 어떤 것일까?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것은 재현가능성이다. 특정 과학실험을 해서 특정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 결과는 새로운 이론, 새로운 연구결과로 인정을 받을까? 알다시피 단 한 번의 실험으론 안 된다. 똑같은 조건에서 실험했을 때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 장소와 실험자가 다르더라도 조건과 입력값이 같을 경우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객관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의약품의 경우 재현가능성 실험을 통해 약효가 증명되더라도 임상이라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실험실에서의 재현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실세계라는 또다른 실험실속에서 재현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이 임상과정이다. 임상시험과정도 간단하지 않다. 안정성 검증인 1상, 소규모 그룹 대상의 2상, 대규모 그룹 대상의 검증인 3상을 거친다. 3상을 통과한 해당 약이 출시되더라도 시판후 조사(PMS)라는 4상의 과정을 거친다. 생산중지가 될 때까지 의약품의 검증과정은 계속된다. 실험실이라는 특정 조건에서의 실험결과가 일반적 조건이라는 현실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계속 재현되는지 끝까지 검증한다. 의약품의 경우 효능, 효과, 부작용 등이 재현 가능성을 판단하는 결과치다. 한 번의 실험으로 결과를 믿지 않고 지속적인 의심과 검증의 과정이 객관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과학세계에서의 객관성이란 재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끊임없는 의심과 검증의 피드백루프 과정이다. 삶과 직업의 세계에도 피드백루프가 필요하다.
12,000개가 넘는 다양한 직업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일의 세계는 주관성이 중요할까? 객관성이 중요할까? 업무 회의 때 팀장의 “자네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건 저의 느낌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팀장님, 저를 못 믿으세요? 저는 믿음이 없는 사람과는 일 못합니다.”라고 대답하면 함께 일하기 힘들다. 기업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기업에서의 사고방식, 기업에서의 언어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객관성이란 다양한 조건에서 입력값에 따른 결과값을 얼마나 일반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하지만 무조건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에 출시되는 신상품의 2%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성공을 거둔다고 한다. 사업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들로 투자를 해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해도 98%가 실패한다는 뜻이다.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장담해서 시작한 일의 대부분은 실패한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공부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아무리 완벽한 진로 로드맵을 만들어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치열하게 객관적인 시장분석을 하고,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완벽한 제품을 개발해도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것처럼 일의 세계와 삶의 세계는 비슷하다. 일의 세계에서 객관성이 항상 통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공공 영역의 일이든 사적 비즈니스든 일의 최종 대상은 사람이다. 지구인이라 통칭되는 변덕스런 개개인이 일의 결과물인 물건과 서비스의 좋고 나쁨을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은 계속 변한다. 일의 세계에서 말하는 객관성이란 그때그때 달라지는 인간의 주관성으로 이루어진 유동적 데이터다. 일도 과학실험처럼 객관성 기반으로 이루어지지만 업무 세계에서 불리는 객관적 데이터란 국민과 소비자라는 개개인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주관성으로부터 나온다. 과학은 불확실성 속에서 확실성을 발견하며 객관의 세계를 구축하지만, 일은 확실하게 보이는 것도 불확실하다는 걸 발견하며 객관의 세계를 구축한다. 일의 세계에서 유일한 객관적 사실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은 예측도 재현도 어려워 불확실하다는 배움 하나뿐이다.
경영자든 실무자든 멋진 사업 아이템, 업무 개선 아이디어는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혼자만의 힘으로 완벽한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 끙끙거리며 온갖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정리하는데 모든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 완벽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경쟁업체가 비슷한 아이디어로 만든 시제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먼저 내놓을지도 모른다. 떠오른 아이디어가 과연 객관적으로 타당한지 혼자서 완벽한 검증의 과정을 거치겠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어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주관적 아이디어를 함께 공유하며 객관적으로 검토하며 구체화시키는 것이 일의 과정이다. 기업에서 강조하는 협업과정이다. 협업은 각자의 주관성을 서로 나누는 과정이다. 특정 생각, 아이디어를 머리 밖으로 내어 놓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일의 시작이다. 다음은 제시된 아이디어를 검토하며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여러 주관적 생각들을 함께 공유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을 하며 테스트도 해보는 단계다. 객관적 분석을 통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을 검토하며 일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다음은 최종 의사결정이다. 결정과정에서도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통해 완벽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시간과 자원을 쏟는다면 그 무엇도 실행될 수 없다. 일의 세계에서 결과를 100% 예측할 수 있는 객관적 데이터는 없기 때문에 주관적 결단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1단계에서 주관과 직관으로 아디이어를 내고, 2단계에서 객관적 과정을 거쳐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다면, 3단계에서는 다시 주관과 직관으로 실행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최종 의사결정의 단계에서 현명한 주관적 결단력이라는 능력을 발휘하면 기업을 운영하는 훌륭한 경영자, 주도적 업무추진으로 성과를 내는 실무자가 된다. 검토의 대상이 일이든 삶이든 최종 의사결정은 철학, 비전과 같은 주관적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이 이루어진다. 인문과 경영, 주관과 객관이 서로 융합되어야 합리적 과정, 바람직한 결과가 나온다. 한 사람을 설명하는 주관적 가치의 총합은 인성이다. 세상과 삶은 불확실하고,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인성이 드러난다. 한 사람의 인성을 이루는 항목인 가치관, 직업관, 인생관, 세계관은 신입사원 채용과정뿐만 아니라, 업무수행과정에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과학이란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말처럼 인간이 그려내는 현실 세계에서의 완벽함, 성공 가능성이란 객관성을 추구하는 태도지 객관성 자체가 아니다. 신처럼 완벽해질 수 없음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처럼, 불가능함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객관의 세계를 향한 질주가 일의 과정이다.
진로를 고민하고, 일하며 삶을 살아갈때는 객관과 주관을 적절히 조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일이 있으면 나의 직관을 믿고 주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사회적 인정을 못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썩 내키지는 않지만 성공할 확률이 높은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것은 어리석다. 왜냐하면 세상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위험이기도 하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그 일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 99%라 하더라도 내가 실패한 1%의 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99%가 실패한 일이라 하더라도 내가 성공한 1%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세상에는 어떤 직업과 일이 있는지 알아보는 객관적 접근을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생긴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할때는 나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주관적 결정을 하는 것이 좋다. 삶이란 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를 연결짓는 과정이다. 나의 가치는 주관적이고 세상의 가치는 객관적이다. 나의 가치인 주관의 세계는 타인의 가치들로 구성된 객관의 세계의 도움으로 구축된다. 주관과 객관이 연결되고 소통이 잘 되면 좋은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아직까지 해변에서 조개를 줍는 소년과 같다.”고 말했다. 해변의 거대한 백사장이 객관의 세계라면 한 알의 모래알은 주관의 세계다. 세상 앞에 개개인은 한 알 모래같은 존재다. 세상이라는 객관의 세계를 살아가는 주관적 존재인 나는 겸손해야 한다. 객관성의 세계에 대한 겸손은 모든 가능성의 원천이다. 겸손은 배움과 성장의 문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