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의 본질 03화

공무원과 공정성

직업으로 생각하는 일의 본질

by 피라

공무원은 공정하게 일해야 한다. 공무원뿐만이 아니다. 모든 일에 공정성이 빠지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일의 과정에도 문제가 생겨 삐걱거리고, 일의 결과에도 문제가 생겨 다시 일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정성은 직업 활동의 기초다. 가정에도 공정성이 필요하다. 삼형제가 있는데, 부모가 허구헌날 둘째에게만 청소, 설거지, 심부름을 시킨다. 둘째가 참다참다 한 소리 한다. “아빠, 왜 저만 이런 일을 해야 하나요? 이건 공정하지 못해요!” 그러자 아빠가 대답한다. “아들아, 첫째는 고 3이니까 공부를 해야 해, 막내는 아직 초등학생이잖니, 중학생인 네가 해줘야지, 첫째와 막내에게 시키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야.” 말을 그렇게 그렇게 했지만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 아빠도 잘 모르겠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마이클 샌들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읽어봐도 마찬가지다. 읽을때는 알 것 같았는데, 책을 덮고 살다보니 기억도 잘 나지 않고, 현실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정이란 말은 영혼없는 꾸밈말 같다. 잘 먹는다의 앞에 붙는 <잘>과 비슷하다. 잘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 위주의 식단으로 먹는다는 말인지, 뷔페에 가서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못할 것처럼 먹는 일인지, 푸드마일리지가 낮은 음식을 먹는 것인지, 하던 일을 마저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먹는 일인지,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고향에서 직접 농사지어 보내온 쌀로 밥을 지어 먹는 것인지 정확히 정의하기가 힘들다. 그냥 내가 잘 먹었다 한 마디 하면 잘 먹은 것처럼 공정도 그런 단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뭔가 분명한 원칙과 기준이 있는 듯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잘먹었다고 하면 잘먹은 것이든 잣대와 기준이 모호하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행복의 개념이 모호한 것처럼 모두가 공정한 사회를 원하지만 공정의 개념은 구체적인 사안마다 모호하고 제각각 서로 상충된다. 세상의 공정성은 어렵고 복잡하지만 일에 대한 공정성은 의외로 간단한다. 일을 공정하게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요소만 고려하면 된다. 사람과 가치다. 사람은 공정성의 대상이고, 가치는 공정성의 내용이다. 일이란 다양한 가치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간극을 줄이고,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이다. 일을 공정하게 한다는 것은 일과 연관된 사람, 일의 대상인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를 골고루 고려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정하게 일한다는 내 머릿속 개념은 간단하지만 일하는 현실에서는 간단하지 않다.


A는 한 회사의 채용담당자다. A는 자신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천성적으로 공정함을 좋아하고 채용의 공정함을 지키며 누구보다 잘 일한다 자부하기 때문이다. 퇴직예정자가 발생해 채용공고를 내고 서류전형을 했고, 면접전형이 남았다. 인사팀장이 부른다. 이력서를 하나 던져주며 이번에 채용해 일을 시켜보라고 한다. 이력서의 주인공은 전무의 조카라고 한다. 검토해보겠다는 말만 하고 나왔다. 이력서를 보니 전공도, 자격조건도 맞지 않아 검토의 대상도 아니다. 마음이 불편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무엇보다 채용 담당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안된다고 말하고 갈등이 생기면 끝까지 굽히지 않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내부고발자가 되어 언론에 제보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린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동생이 내년에 졸업하는데 자신의 회사에 입사를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부담감에 그때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고민이다. 여친의 동생은 입사조건은 된다. 하지만 면접 등에서 자신이 관여해야 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A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채용의 공정성이라는 소신을 지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까지 지키는 것, 지시대로 진행해 넘어가는 것, 그래야 조직에서도 인정받고 여친의 동생도 채용이 쉽게 될거라는 것, 여친의 동생을 그렇게 입사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여친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 언론에 보도되는 채용비리와 자신의 모습이 겹쳐쳐 괴롭다. 이때 어떤 결정을 해야 공정하게 일하는 것인지 타인이 생각하면 단순하다. 채용비리는 안되니까. 하지만 여러 이해가 설킨 당사자 입장에서는 공정의 가치는 흐려진다. 끝까지 반대하다 안되면 언론에 알린다. 퇴직(당)한다. 여친과도 헤어진다. 구직활동을 한다. 구직 기업의 평판조회에 혼자 잘난체 하고 조직을 배신한 내부고발자로 알려져 구직활동도 번번이 실패하다 술과 담배로 삶을 보내다시하다 편의점에 담배가러 가다 쓰러져 구급차를 탄다. 췌장암 말기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와 같은 삶에 도움되지 않는 불필요한 상상 때문에 대부분은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신념과 타협을 한다. 하지만 업무를 할 때 자신의 이해관계를 개입시키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기본 태도가 아니다. 애초부터 여친문제는 자신의 일과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 뒤에 생기는 문제는 별개로 풀어나가면 된다. 내부적으로도 팀장과 전무에게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밝혀야 한다. 갈등이 심해지면 그때 생각한다. 오지 않은 상황까지 미리 끌어당겨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 최선을 다하고 나중에 생기는 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이런 단호함과 노력없이는 일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흔치는 않겠지만, 자신의 의견을 소신있게 밝히면 팀장과 전무가 속으로는 이런 친구는 믿음이 가니 끝까지 함께 일해야겠다며 감동할지도 모른다.


자신 또는 자신과 연관된 이해관계를 철저히 배제하는 것은 모든 업무의 기본이다. 일을 일답게 하는 전제는 나의 주관적 이해를 배제하는 것이다. 공정하게 일하는 것은 하나를 빼고 하나를 넣는 과정이다. 나의 이해관계를 일에서 배제하고 나면, 일과 연관된 가치들을 모두 집어넣어야 한다. 그린벨트를 풀고 재개발을 하면 도심녹지라는 가치가 훼손된다. 대신 주택공급이라는 가치가 실현된다. 적은 예산으로 공사를 밀어붙이면 저가 하도급의 문제와 부실공사라는 문제가 생겨 좋은 보금자리라는 주거인의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서로 부딪히고 연결된 가치들을 모두 고려해 반영되지 않는 가치를 최소화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의사결정해야 한다. 아예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공정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작은 목소리도 아무리 개인적으로 반대하는 가치라도 모두 고려의 대상으로 넣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우선가치를 찾아낸다. 일의 과정은 토의가 아니라, 토론이다.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내어야 한다. 한 가지 방향으로 결론을 내면 실망하는 사람은 분명히 생긴다. 구현되지 않은 가치를 최소화하기 위한 합리적 과정이 기획, 분석, 회의 등의 타당성검토 단계다. 공정하게 일하는 것은 매몰되는 가치를 최소화하고 실현되는 가치를 최대화시키는 과정이다. 일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배제하고, 일과 연관된 다양한 가치들을 모두 받아들여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공정하게 일하는 과정이다. 업무수행에서 공정함이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의사 결정한다는 뜻이다. 사기업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더 많이 팔린다는 뜻이다. 공정하게 일하면 공무원은 칭찬받고 직장인은 보상받는다. 공무원의 일이든 사기업의 일이든 원리는 똑같다. 공공성은 공무원들만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다. 사기업도 공공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ESG도 공공성의 기업버전이다.


공정하게 일하자!고 포스잍에 써 붙인다고 저절로 공정하게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정함이란 생각이나 결심의 문제가 아니다. 공정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여러 이해관계와 엮인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코로나19로 경제와 방역이라는 상충되는 대립구도 속에 얼기설기 엮인 다양한 이해관계를 풀어나가는 일은 어렵다. 일은 목표와 원칙도 중요하지만 과정과 결과가 공정해야 한다. 과정의 공정함이란 공무원은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기업은 시장은 다양한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울이는 일이다. 일이란 다양한 가치들을 분석하고 다루고 조정하고 편집하며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가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 다양한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신념에 매몰된 탈레반같은 태도로는 공정하게 일하기 어렵다. 세상의 다양한 가치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왜 그런 주장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업무수행을 위한 현실 속의 합리적 기준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다양성에 기반하지 않은 공정성은 허상이고 관념이다. 공정하려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공정함으로 연결된 다양한 가치는 건강한 생태계가 되어 세상을 풍성하게 가꾼다. 건강한 생태계에서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다양한 가치는 나와 타인의 다양한 가능성과 연결된다. 가치 다양성에 기반한 공정함은 모두의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공정하게 일하면 더 많은 사람의 삶이 개선된다. 공정성은 일하는 과정일뿐 아니라 일의 결과이기도 하다. 일과 삶의 문제는 과정에 대한 갈등이며 과정은 이미 결과를 픔고 있다.

keyword
이전 02화과학자와 객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