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의 본질 06화

조리사와 조화

직업으로 생각하는 일의 본질

by 피라

1957년 4월 1일, 영국 BBC방송은 역사에 남을 유명한 만우절 장난을 선보였다.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당시 높이 평가받던 한 방송인이 평년보다 겨울이 따뜻해서 그해 스위스에서 스파게티 풍년이 들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굉장히 진지하게 보도했다. 산속에 자리한 과수원에서 농부들이 나무에서 스파게티를 따는 화면도 보여주었다. 시청자들 대부분은 이 보도가 사실이라고 믿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스파게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음식이 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지금은 다를 수 있다. 오늘날 스파게티는 영국인이 애써 요리하는 몇 안되는 음식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오늘날 대부분의 영국 학생들은 그들이 먹는 음식의 재료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는 종종 학생들에게 감자, 양파, 부추 등을 보여주며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마치 다른 행성의 생물을 보듯 당혹스럽게 쳐다보거나 토마토를 보고 감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직접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고 소, 돼지, 닭도 키우고 도살까지 했기 때문에 음식 재료들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음식재료를 주로 볼 수 있는 곳은 마트다. 음식 재료로 직접 사서 요리해서 먹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배달, 식당, 편의점 등에서 재료를 가공해 음식으로 완성한 제품을 사먹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대 도시 사람들의 관심은 손질하고 조리해야 음식 재료가 아니라 바로 입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이다. 다양한 음식 재료를 음식으로 만드는 사람이 조리사다. 우리가 알고 다룰 수 있는 음식 재료가 점점 줄어든다면 그건 조리사 때문이다. 하지만 조리사 덕분에 우리는 음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자르고, 양념하고, 숙성하고, 불앞에서 굽고, 끊이고, 볶고, 담는 번거롭고 힘든 과정없이 주문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싶은 건 모두의 바람이다. 조리사도 마찬가지다. 더 맛있고 더 건강한 음식이라는 조리사의 직업적 성취가 높아질수록 사회적 인정으로도 연결된다. 대부분의 조리사들이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인정을 받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한 그릇에 만원인데 한 그릇의 들어간 음식재료에만 만원을 쓸 수 없고, 스파게티전문점인데 된장찌개를 메뉴를 만들 수 없다. 좋은 재료를 쓰면 좋은 음식이 될 확률이 높다는 걸 알지만, 주어진 예산과 상황 때문에 선택가능한 음식재료는 한계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음식재료의 한계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음식의 맛과 비쥬얼에 집중하게 된다. 음식의 맛이란 대체로 조화와 균형으로 설명된다. 음식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맛있다고 느낀다. 지나치게 짜거나, 지나치게 싱거우면 맛이 없다고 느낀다. 여러 맛을 골고루만 섞는다고 맛있는 것도 아니다. 된장찌개에 설탕을 넣으면 이상하듯 각 음식의 특징에 맞게 강조할 맛과 배제할 맛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좋은 맛이 나온다. 또한 음식의 향과 비쥬얼도 맛의 중요한 요소다. 향도 무조건 강해서, 약해도 안되고 각 음식의 재료와 특징에 맛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아무리 향과 맛이 좋다고 해도 우동 한그릇을 믹스에 갈아 컵에 부어 마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음식의 비쥬얼은 시각적 조화와 균형이기도 하지만, 제각각의 음식을 적절히 구분시켜 플레이팅하면 먹을 때 적절한 촉각을 자극해 더욱 맛있다고 느낀다. 또한 지나치게 질기거나, 지나치게 흐물거리면 맛없다고 느낀다. 스넥이나 튀김을 씹을때의 바삭거림과 같은 청각도 맛을 도와준다. 맛이란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청각의 조화와 균형으로 인한 입체적 감각이다. 조리사는 제한된 음식 재료를 통해 개별 음식에 맞는 최적의 오감 느낌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각 요소들이 메뉴라는 개별 상황에 맞게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한 입 베어물고선, ‘어.. 맛있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맛이란 서로 다른 것들의 조화다. 맛이란 개별적인 것들이 각각의 상황에서 서로 조화롭게 연결되어 균형을 이룰 때 느끼는 융합적 감각이다.


심리적 요소도 음식의 맛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랑한 사람과 헤어진 직후에 먹으면 아무 맛을 못느낄 수 있다. 배달음식이든, 식당에 가서 먹는 음식이든 사먹는 음식은 누가 어떻게 만들었지는 대부분 관심없다. 눈 앞에 펼쳐진 음식, 혀에 닿는 감각을 중심으로 한 맛이 음식 평가의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식당 일을 끝내고, 밤에 몰래 돌아다니며 캣맘이 주는 길냥이의 사료와 물에 독극물을 섞는 행동을 하는 조리사가 만든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면 먹기가 꺼려질지 모른다. 아동성폭행범이 만든 음식, 연쇄살인범이 만든 음식은 대부분 상상도 하기 싫을 것이다. 아무리 미슐랭 3스타 식당이라고 해도 범죄자가 음식을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음식 자체의 맛과는 상관없이 먹기를 꺼릴 것이다. 먹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이다. 한 그릇의 음식에는 수많은 관계들이 담겨 있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 타인과 타인과의 관계, 음식재료와 타인과의 관계, 나와 음식재료와의 관계, 음식재료와 음식재료와의 관계들이 한 그릇에 담겨 있다. 큰 마음 먹고 맛집을 찾아가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음식을 만드는 내내 주방에서 욕설하며 큰 소리로 싸우며 만든 음식이 나온다면 어떨까? 조용한 주방이지만, 삶의 절망에 빠진 조리사가 눈물을 훔치며 만든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누가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는지는 때에 따라서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삶과 마음 상태는 음식을 사먹는 사람의 관심 밖의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행복한 조리사가 만드는 음식이 맛있을 가능성이 크다. 배달음식 한 그릇을 통해서도 우리는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결정하는 것은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우리 앞에 왔는지도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의 상태로 음식을 만들었는지, 음식 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지와 같은 과정도 중요하다. 삶에서 연결되는 수많은 관계가 조화로울수록 행복한 삶이 될 확률이 높듯, 음식에 담긴 수많은 관계가 조화로울수록 좋은 음식일 가능성일 가능성도 높다. 조화와 균형이라는 지구생태학적 관점에서 음식을 바라보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한 필리핀 어부가 흐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새우가 우리보다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새우에게는 전기도 있지만, 우린 없습니다. 새우는 깨끗한 물을 먹지만, 우린 아닙니다. 새우는 잘 먹고 있지만, 우린 굶주리고 있습니다."


음식을 통해 관계를 맺고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우리가 먹는 새우의 절반 이상은 자연산이다. 자연산이라고 좋아하면 바보다. 문제가 있다. 바닥을 기는 새우는 대부분 강 하구, 만이나 대륙붕 등에서 잡는다. 트롤어선이 거대한 원뿔형 그물로 바닥을 긁으며 싹쓸이한다. 그물이 한 번 지나가면 해양생물의 서식지가 무참히 파괴되고, 모든 생물들이 사라져버린다. 대륙붕과 같은 생산성이 가장 높은 해양 생태계를 초토화시킨다는 말이다. 그물에는 바다거북, 물고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생명들이 새우와 함께 걸려 올라온다. '부수어획'으로 불리는 이들 생명들은 바다에 다시 던져지는데 대부분 죽는다. 새우를 10톤 잡으면 온대지역의 부수어획량은 50톤이고, 열대지역은 100톤이다. 내가 오늘 시푸드 뷔페에 새우를 3마리 먹었다는 말은, 30마리의 생명이 불필요하게 무의미하게 죽어갔고, 그 지역의 해양생태계가 초토화되었다는 말이다. 만약 내가 먹는 새우가 양식 새우였다면, 새우 때문에 전 세계의 망글로브 숲의 25%이상이 파괴되었고, 양식장 운영 때문에 주민들과 충돌했고, 그 과정에 주민들이 쫓겨났고, 토지강탈, 폭력, 협박,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났다는 의미한다. 새우 양식장 하나가 만들어지면 일자리가 15개 늘어나고, 양식장 주변을 지키기 위한 일자리가 50개 만들어진다. 하지만 전통 어업 및 농업의 손실, 토지의 손실로 약 5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한다. 오늘 한 마리의 새우를 먹기 위해서 머리를 따서 버리고, 발을 떼어내고, 살만 살짝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는 그걸 내가 먹기까지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우리 사는 지구는 이렇듯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유기적 생태계다.


산다는 것은 서로 다른 존재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조리를 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재료를 조화시키는 과정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잘 어우러져 조화와 균형이 맞을 때 삶의 맛도 나고, 음식의 맛도 난다. 결과만 중요시해서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문제가 되듯, 음식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무시하고, 무조건 맛과 비쥬얼만 좋다는 태도는 반쪽의 조화와 균형만 생각하는 태도다. 내 삶으로 인해 타인들의 삶이 나빠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혀를 유혹하는 맛도 중요하지만 삶의 터전인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태도와의 조화가 필요하다. 나를 위한 마음과 타인을 위한 마음이 조화되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조화와 균형적 태도가 넓고 깊을수록 삶에서는 더 많은 기회, 음식에서는 더 많은 기쁨을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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