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 생각하는 일의 본질
5살 아이는 색종이로 접은 미니카를 좋아한다. 아빠가 미니카를 접어주면 엄마에게 보여주며 자랑한다. 어느 날 아이가 혼자서 종이를 접어 미니카를 만들었다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빠에게 보여주었다. 접어주던 미니카와 다르다. 도무지 자동차라고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만든 걸 물끄러미 보던 아빠는 친절하게 말한다. “미니카를 만들고 싶었구나. 미니카는 이렇게 접는 것이 아니고, 자 봐봐....” 아빠는 아이가 만든 색종이 미니카를 다시 펴서 제대로 만드는 방법을 아이에게 가르쳐준다. 이때 “아, 그렇군요. 제대로 가르쳐 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좋아하는 아이도 간혹 있겠지만, 대부분 아이는 실망, 토라짐, 짜증과 화를 동반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이는 미니카 만드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뭔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육아법에서 아이 스스로 뭔가를 했을 경우, 특히 그걸 자랑할 때는 일단 칭찬부터 하라고 전하고 있다. 칭찬부터 한 다음,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제대로 된 걸 알려주는가는 제각각 다를 수 있다. 아이를 키울 때 제대로 된 것을 가르쳐주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지적질부터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아이든 어른이든 타인의 인정은 삶에서 중요하다. 살아가는 힘의 바탕인 자존감을 형성시키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인정이라는 기초 위에서 건강한 인격체로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대부분 부모는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어서 어릴때는 왠만하면 아이들에게 칭찬부터 한다. 칭찬의 정점은 누가 뭐래도 어른들끼리는 흔적만 보여도 기겁하는 똥이다. 육아 세계에서 똥은 황금으로 변신한다. 배변훈련을 할 때 아이 스스로 똥을 누면 박수치고 환호하며 감동하기까지 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기저귀에서 아이가 생산한 첫 똥을 본 부모는 대단한 금덩어리라도 발견한 듯 신기한 눈으로 이리저리 관찰한다. 똥은 아이 스스로 만들어 세상에 보여준 놓은 첫 작품이다. 칭찬하는 부모를 보며 아이도 자랑스러워한다. 대부분의 아이는 똥만 누어도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자라지만, 나이가 들수록 “넌 도대체 똥 누는 것 말고 제대로 하는 것이 뭐니?”라는 사회의 냉소적 시선에 익숙해진다.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은 아이의 마음 속에 켜켜이 쌓여 내가 나를 보는 시선으로 자리잡는다.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는 건 인정의 결핍에 시달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인정받을 때 힘은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다. 인정하는 타인이 많은 상태를 사회적 인정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사회적 인정을 성공이라고 부른다.
타인의 인정을 기반으로 한 대표적 직업은 연예인이다. 춤이든, 노래든, 연기든 자신의 뭔가를 보여주고 그것에 대한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통해 연예인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연예인이라고 할 수 없다. 혼자 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연기를 잘해도 아무도 그걸 보는 사람이 없다면 연예인이 아니다. 연예인은 자신의 모습, 자신의 생산물을 보는 타인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는 직업이다. 연예인의 성공은 대중들의 숫자에 달려있다. 좋은 관심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을수록 성공한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은 타인의 인정과 관심이 필요하다. 내가 만드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타인의 관심을 얻어내기 위해 마케팅을 하고, 타인의 인정과 좋은 평가를 위해 생산물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생산물을 만든다. 연예인의 연기나 춤, 노래처럼 기업에서 만드는 물건, 서비스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찾는 사람이 많으면 기업은 성공한다.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들에게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예인들의 활동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연예인들의 활동이 대중들의 삶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감되는 노래와 춤, 연기로 대중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대중들은 연예인들의 활동을 통해,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감동한다. 연예인의 인기의 바탕은 정서적 공감이다. 대중들은 연예 활동을 통해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재미, 휴식, 감동을 준 연예인들을 인정하고 따른다.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만족을 준 브랜드와 기업의 물품과 서비스를 계속 구입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예인들의 생산물품은 정서적 공감과 감동이다. 자기만의 세상, 자기만의 가치를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연예인과 기업은 같다. 연예인은 대중들의 평가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직업이다. 대중들의 평가는 연예인 개개인에게 직접 향하고 그 영향력은 때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 대중들의 폭발적 지지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쁨의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고, 대중들의 비난에 세상 모든 걸 잃은 것처럼 절망에 빠질수도 있다. 악플에 연예인의 삶이 무너져 더 이상 삶을 지탱하기도 힘들 수도 있고, 선플 하나에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연예인만큼 대중들의 반응에 그들의 삶과 감정상태가 좌지우지되는 직업은 없다. 대중의 인기는 칼의 양날이다. 인기의 시작은 관심이다. 관심 때문에 연예인이 되고, 관심 때문에 연예인을 그만두기도 한다. 연예인은 나를 세상에 보여주기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 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수록 보람과 가치를 느끼는 사람에게 적당한 직업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고, 비난을 할때도 견딜 수 있는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관심은 언제나 부정과 긍정이라는 두 속성을 함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의 이중적 속성 때문에 연예인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오고간다. 비단 연예인뿐만 아니다. 모두의 삶도 역시 타인의 생각과 평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온간다.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의 삶에 타인의 영향력은 크고, 내가 원하지 않는 영향력일 경우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다. 연예인에게 타인은 지옥이자 천국이다. 타인은 지지와 응원만 해주지는 않는다. 타인과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만을 바라는 연예인에게 대중은 지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타인은 항상 바뀌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과 비판을 함께 받아들일 줄 아는 연예인에게 대중은 천국이 될 수 있다. 타인의 판단과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나의 성장과 배움을 위해 받아들일 비판이 있으면 수용하며, 타인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이미 천국을 사는 사람이다. 연예인의 삶이 힘든 이유는 대중들은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연예인의 활동과 연예인의 삶을 구분해주면 좋겠지만, 대부분 대중은 연예인의 사생활과 연예인의 활동을 동일시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로 명배우가 되어도 사생활의 문제나 범죄행위가 확인되면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명연기, 감동적인 춤과 노래, 멋진 쇼진행 등 연예인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연예인의 삶을 기반으로 한다. 연예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활동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지만, 대중들의 인기를 오래오래 유지하는 비결은 연예인들의 삶에서 나온다. 연예인들의 사생활, 즉 진짜 모습과 대중들에게 알려진 모습이 다른 경우 대중들의 관심은 폭발한다. 겉모습과 진짜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다. 조선시대 빨래터의 뒷담화든 2021년 포털사이트의 폭로뉴스든 똑같다. 사람은 진실에 열광한다. 대중들에게는 자상하고 친절한 남편이었는데, 아내를 상습폭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 대중들에게 알려진 모습은 이기적이고 냉정한 모습인데, 실제로는 수입의 절반 이상을 부모없는 아이를 위해 기부해온 사실이 알려진 경우, 대중들은 연예인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것을 통쾌하게 여긴다. 일거수일투족, 사생활, 살아가는 방식 등에 대중들과 공유당해야만 하는 연예인들의 삶이 참 고달플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알려줘도 상관없는 진짜 나의 모습대로 일관되게 삶을 살아간다면 문제가 없고, 그런 삶의 모습이 알려져 더욱 대중적 인기가 많은 연예인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에게 사생활이란 위기이기도 하고 기회이기도 하다. 가식적인 삶을 살면 위기고, 진실된 삶을 살면 기회다.
대중들의 시선은 연예인이 만드는 결과물에서 연예인 자체, 즉 인간적 면모를 향한다. 그래서 그가 펼치는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결국은 어떤 사람인가가 대중의 인기와 인정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르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대중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다. 기업이나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드러난 기업의 진실, 드러난 개인의 진실로 인해 얼마나 극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가의 문제일뿐이다. 반대로 드러난 진실이 감동을 주는 경우에는 기업도 개인도 대중의 인정과 지지를 받는다. 진정성의 힘은 연예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진정성의 힘으로 성공하고 실패한다. 연예인은 내게 없는 뭔가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연예인이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항상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연예인은 나를 잊어서는 안된다. 나라는 것은 나의 가치다. 대중들은 궁극적으로 연예인이 추구하는 삶이 가치에 열광한다. 삶의 가치는 삶의 이유에서 비롯된다. 연예인이 자신의 가치, 지향하는 가치없이 연기에 임한다면, 연기를 하면서 의미부여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연기를 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스케줄에 따라서 열심히 연기하고 열심히 활동하지만 스케줄에 따라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삶에서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연예인은 힘들어진다. 지옥의 스케줄로 활동하다 문득 여유있을 때 고개를 들면 내가 누굴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져 눈물이 나기도 한다. 다 부질없고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팬들의 격려와 응원을 접하면 또 힘이 나기도 하지만, 팬들이 등 돌리고 악플이 판을 치고, 인기가 예전같지 않으면 열심히 쌓아왔던 삶 자체가 산산히 무너질 수 있다. 나를 버티게 하던 유일한 버팀목인 대중적 인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타인의 무관심으로 무너지기도 하지만, 지독한 관심으로 무너지기도 한다. 상황과 정도의 차이일뿐 일반인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연예인은 타인들의 의해 존재하는 직업이다. 연예인의 정체성, 삶의 의미, 직업적 가치가 타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면 그 삶은 매우 위태롭다. 나의 운명을 타인에게 맡긴 꼴이기 때문이다. 남들의 의견의 좌지우지되는 직업일수록 주체성이 중요하다. 주체성이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나와 생각이 다른 대상들과 싸우며 이기려고 하는 전투력과는 다르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든 나만의 자존감, 나만의 삶의 의미 같은 것이 굳건한 상태가 주체성이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우뚝 서서 걸어갈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런 주체성, 자존감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하다. 연예인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 타인들의 후기들만으로만 가득하다면 그 연예인의 삶은 위험하다. 나의 정신을 이루고 있는 것이 타인들의 시선, 타인들의 평가, 타인들의 반응을 살피는 마음이 전부라면 그런 삶도 위험하다. 일을 할 때도 그렇다. 시키는대로 인정을 받으려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 일을 왜 하는지, 내 삶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자신을 숨기는 연예인은 큰 인기를 누리기 힘들다. 자신을 숨기고 가식적 모습을 보이면 일시적으로는 인기를 얻을 수 있지만 지속적 대중적 인기를 얻기는 힘들다. 연예인은 숨을 수 없는 직업이다. 연예인은 끊임없이 자기표현을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 나만의 색깔은 화려한 연기, 화려한 말솜씨, 현란한 춤, 기교절정의 노래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교와 기술은 진정성있는 삶에서 우러나온다. 삶이 바탕되지 않는 기교와 기술은 일시적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으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예인 자신의 삶이 직업적 바탕이 되어야 한다.
연예인은 자신의 가치를 찾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야 한다. 대중들에게 보이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는 걸 알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자신만의 색깔과 표현을 완성시켜가는 방법이다. 명연기란 맥락을 알고 마음을 담는 것이다. 맥락을 알기 위해서는 많이 공부하고 많이 경험해야 한다. 마음을 담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가 진정성 있는 삶에 닿아야 한다. 기능과 기교적 표현의 완성도는 점점 완벽에 가까워질 인공지능 연예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인인간의 삶 속에 담긴 희노애락을 통해 감동을 전달하는 인간 연예인은 완벽함을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인간다움을 통해 감동을 받는다. 인간답다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다. 결함과 문제, 모순과 상충, 갈등과 번민이 뒤섞여 불완전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다움이다.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그런 과정이 훌륭한 연예인을 만드는 과정이다. 타인이 원하는 나와, 내가 원하는 나 사이에서 길을 찾아가는 일은 연예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숙제다. 타인이 평가만이 일하고 삶을 사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아가며 내 가치를 발견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키우는 일은 연예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모든 직업인, 모든 사람들은 연예인처럼 살아야 한다.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무명의 기간을 참고 견디는 시간, 아픔의 치유하는 시간, 자존감을 회복하고 가치를 찾는 시간. 그리고 기어코 자신만의 색깔과 표현으로 가치를 실현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게 삶의 이유다. 그런 삶을 훌륭한 연예인의 삶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