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의 본질 05화

간호사와 인간애

직업의 생각하는 일의 본질

by 피라

중세시대에 갑옷을 닦아 기사에게 입혀주고 벗겨주었던 직업처럼 세상에는 생겨났다가 사라진 수많은 직업이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태어나 번성하고 기존의 직업은 쇠퇴하고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직업은 생명과 같다. 생명의 생로병사 과정과 직업의 생성, 번성, 쇠퇴, 소멸의 과정이 서로 닮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직업이 없으면 건강한 삶을 살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생계를 위한 직업이 없는 상태를 사회적 죽음으로 여기기도 한다. 직업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될만큼 자산이 충분한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업은 삶의 빛이자 생명이다. 직업은 양면성이 있다. 어떤 이는 직업을 통해 생활이 윤택해지고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직업 때문에 삶이 무너지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직업을 가지지만 또한 직업 스트레스로 많은 이들의 삶이 피폐해진다.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다. 직업은 사람과 같다. 70억명의 제각각 다른 사람들 중에 누구와 만나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모두 다르다. 고작 수십명, 수백명의 사람을 만나보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여기는 태도는 어리석다. 좋은 만남을 찾기 위해 70억명의 사람을 다 만나볼수도 없다. 삶을 갉아먹고 공격하는 직업이 아니라, 삶을 돕고 개선시키는 나만의 직업을 찾기 위해 모든 직업 경험을 다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수박 겉핥기처럼 수많은 직업을 스캔하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의 지혜가 쌓이면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보다는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똑같다는 걸 알게 된다. 타인 삶에 대한 이해는 나 자신의 삶의 길을 열어주는 마중물이다. 삶이란 나와 세상을 연결짓는 과정이다. 직업이란 나와 일을 연결짓는 과정이다. 타인과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바탕된 삶의 본질을 아는 사람들은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아지듯, 직업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내게 맞는 좋은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새로운 직업이 생기고 기존의 직업이 사라지는 현상은 다음 세대로 자신의 역할을 맡기고 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 직업이 생기고 사라지는 이유는 필요 때문이다. 갑옷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스스로 입고 벗을 수 없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나 4차 산업혁명으로 AI 알고리즘 설계자가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직업이 생기는 똑같은 이유다. 군복이 갑옷을 대신하고 코딩작업을 AI가 대신하면 직업이 사라진다. 필요는 가치에서 나온다. 사회적 가치와 개인적 가치가 서로 연결될 때 직업이 생긴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필요해도 일하는 사람이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직업은 소멸한다. 개인이 아무리 가치를 느끼는 일이라 해도 사회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직업도 소멸한다. 진로를 고민하며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회적 가치와 나의 가치를 연결짓는 과정이다. 공부란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알아가는 과정이며 사회적 가치의 배움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아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곤경에 처한 이를 돕는 인간의 마음은 타인과 나를 연결짓어 문명을 이루는 토대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애 없이 사회가 작동하지 않듯, 생성소멸하는 직업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움직이는 본질적 가치가 있다. 변하지 않는 직업의 본질적 가치를 이해하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나의 직업을 찾아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개인과 사회에 유효한 가치를 지닐 줄기직업에 대한 이해는 다른 직업을 이해하는 마중물이 된다. 각 직업에 내재된 본질적 가치를 이해하는 일은 직업의 본질을 알아나가는 과정이다. 직업에 내재된 가치와 내 삶의 가치를 연결하는 과정은 내게 맞는 좋은 직업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다. 직업의 본질을 안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떻게 일하며 살까라는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평생의 대답 과정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간호사는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직업이 되었다. 간호사는 팬데믹 상황 이전에도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대표적 직업이었다. 진로를 선택할 때 졸업 후 얼마나 취업이 잘 되는가는 중요한 선택기준이다. 특정 직업의 취업이 지속적으로 잘된다는 것은 그 직업의 사회적 수요가 늘어난다는 뜻이고, 이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 직업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이는 그 직업의 사회적 가치가 널리 인정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호사는 사람들에게 직접적 도움을 주고, 사회적 수요도 꾸준히 늘어 취업률이 높은 대표 직업이다. 취업률 때문에 간호학과는 인기가 많다. 대학마다 차이가 있지만 간호학과 입학생의 평균 80~90%는 간호사가 된다. 취업 안정성만으로 직업을 선택하면 취업 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개인의 적성과 가치는 직업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간호사가 되고 싶어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타인을 돌보는 과정에서 얻는 보람과 기쁨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인 인간애가 없는 사람은 간호사라는 직업이 맞지 않을 수 있다. 인간애와 같은 순수한 열정과 가치로 채워진 정신적 에너지는 배터리와 비슷하다. 완충된 상태에서 보조배터리까지 챙겨 외출해도 사용량이 많으면 전화가 전원이 꺼진다. 취업의 기쁨과 인류애로 가득찬 몸과 마음으로 간호사복을 입어도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다보면 인간애로 채웠던 배터리 방전상황을 경험한다. 출근복과 간호사복을 바쁘게 갈아입다가 번아웃을 느끼고 퇴직하는 신입간호사의 비율은 50%를 육박한다. 전체 간호사의 퇴직율은 약 35%다. 한국에서 한 명의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의 숫자는 많게는 40명인데, 이는 외국의 2~3배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버티다 못해 퇴직을 고민하는 간호사는 늘고 있다.


간호사의 일은 환자의 상태 관찰, 특이사항 기록 보고, 투약, 측정과 같은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시간에 해야 하는 일 외에도 예측할 수 없는 온갖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 빨리 와 달라는 응급방송,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벨, 약물 주입기기들의 알람, 병실에서 환자가 누르는 콜벨, 침대에서 떨어지는 쿵하는 소리, 병실에서 나는 신음과 비명, 빨리 와 달라는 보호자의 다급한 외침 등 온갖 종류의 소리들에 간호사는 즉각 반응해야 한다. 오죽했으면 간호사가 카페에 가서 진동벨이 울리면 본능적으로 반응해 쏜살같이 커피를 가지러 간다는 웃기고 슬픈 이야기도 있다. 밀린 일을 던지고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달려가면 “이거 왜 이래요?, 숨이 차요, 얼마나 더 있어야 해요?, 왜 제때 확인 안해요?, 아가씨 남자친구 있어?, 도대체 환자를 뭘로 보는 거야?”등 온갖 상황, 온갖 사람들과 부딪히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대부분 힘들고 아픈 이야기들 뿐이고, 가끔 보람과 절망도 느낀다. 무엇보다 방광의 통증을 많이 느낀다. 온갖 상황에 시시각각 대응하다보면 화장실에 갈 틈도 없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일은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의 일이다. 간호사의 일은 환자의 입원으로 시작해서 환자의 퇴원으로 끝난다. 간호사 일의 대상은 인간의 몸이다. 몸은 입력과 출력으로 유지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 먹고 배설함으로서 몸이 유지된다. 먹는 것은 에너지를 넣는 일, 배설은 다시 먹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입력과 출력이 제대로 즐겁게 이루어지면 건강하다. 환자에게 입력과 출력은 입원과 퇴원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수치다. 병원에 들어온 환자의 인풋과 아웃풋을 잘 체크하고 조치와 처치를 해서 환자가 빨리 퇴원하도록 돕는 것이 간호사의 일이다. 간호사는 수시로 환자의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을 체크해야 한다. 환자에게 입력되는 경구섭취, 수액, 영양제 등을 체크하고, 출력되는 대소변, 구토, 삽입된 튜브의 배액량 등을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많은 간호사들이 번아웃을 겪고 있다. 환자의 인풋과 아웃풋은 철저히 관리하지만, 간호사 자신의 인풋과 아웃풋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탓이다. 간호사는 심리적 인풋인 밀려오는 부정적 상황, 모멸적 태도, 성희롱, 압박감을 감내하며 생리적 아웃풋인 배변활동의 제약을 견디며 책임감으로 버텨내고 있다. 방전된 상태에서도 인내하며 직무수행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간호사의 역할이라는 사회적 가치 때문이다. 어떤 직업이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급여, 복지, 배움, 성장, 보람과 같은 개인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인풋되어야 직업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직업활동을 통해 조직과 사회가 얻는 가치가 개인이 얻는 가치보다 훨씬 많으면 직업이 삶을 공격하게 된다. 반대로 개인이 얻는 가치가 조직과 사회가 얻는 가치보다 훨씬 많으면 개인이 조직과 사회를 무너지게 만든다. 좋은 직업활동이란 개인과 사회가 서로의 가치를 균형있게 지속적으로 주고받으며 서로 성장하는 관계다. 간호사의 긍정적 인풋보다 부정적 인풋이 더 큰 상황이 지속되면 간호사의 본질적 가치인 인류애는 방전되어 다시는 충전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인간은 누구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살피고 돌봐주고 싶은 마음과 연결된다. 타인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사랑의 바탕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면 사랑보다는 투자에 가깝다. 인류애란 상대가 누군지 상관없이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다. 국가와 민족, 종교와 신념, 적과 아군과 같은 조건과 상황에 상관없이 차별없이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인류애다. 인류애는 마음먹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류애는 개개인 일상의 사소한 생각과 태도라는 한줌 한줌의 흙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산맥이다. 작은 생명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마음, 가난하고 힘없다고 차별하지 않는 마음들이 무차별적으로 모여 인류애가 된다. 무엇보다 자신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모습을 업신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더 나은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개개인의 자존감이 인류애의 토대가 된다. 나의 이익만을 쫓는 마음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찾고 성장시키려는 마음은 나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순수한 열정으로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간호사의 마음 어딘가에 숨어있을 인류애가 더 이상 옅어지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타인 마음 속의 인류애는 내 삶의 현재를 설명하고 내 삶의 미래를 그려가는 설계도이기 때문이다. 21년 동안 중환자실에서 근무한 김현아 간호사는 그녀의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아야만 받은 돌봄을 그대로 환자에게 베풀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내 환자들에게 무한한 돌봄을 베푼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밝은 척, 괜찮은 척, 내 환자들에게 미소짓고 그들의 손을 놓치 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은 속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직업이란 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를 어떻게 연결지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서로 연결짓고 순환되어야 사회도 개인도 직업 활동을 통해 성장한다. 일방적 인간관계는 서로의 성장을 이끌지 못해 피폐해지지듯 직업도 마찬가지다. 개인과 사회가 일방적으로 연결된 직업은 쉽게 소멸한다. 개인과 사회가 쌍방적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조건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조건없이 타인을 돕는 일은 조건없이 나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애를 키우는 일은 나만의 좋은 직업을 만들기 위한 수익률 높은 투자행위다. 인간애는 직업의 성립조건이자, 개인과 사회를 성장시키는 동력이다. 직업이란 본질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일이다. 도움에 따른 댓가가 각 직업을 규정하는 나와 타인의 가치의 연결이다. 인간애는 밥과 같다. 먹어야 에너지가 생겨 활동하듯,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 없이 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를 연결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애를 갖는다는 것은 나를 위한 마음과 타인을 위한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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