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간 이야기
뜻을 품고 노력하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원대한 목표, 포기하지 않는 노력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생각을 하면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는 1990년에 좋은 대학의 법대에 입학해서 사법고시 공부를 했다. 몇 번 떨어졌다. 처음부터 쉽게 합격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매진했다. 대학을 졸업했고, 그 뒤로로 몇 년이 지났다. 친구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사법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쯤에 그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이거 끊을수가 없어, 중독성이 있거든. 시험을 치고 나면 확신이 생겨,
다음에 조금만 더 공부하면 꼭 붙겠다는 확신이 들어.
결과적으로 그 친구는 15년 동안 사법고시 공부를 했고, 해마다 응시했고 해마다 떨어졌고, 해마다 다음에는 되리라는 확신으로 살아갔다. 사법고시를 치르던 횟수만큼이나 세월이 흘렀고, 어제 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레식장에 갔는데, 조문 온 친구가 자기밖에 없다는 말에 저녁밥을 먹고 나도 급히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그 사이에 친구 3명이 더 와 있었다. 너 왜 이렇게 늙었냐?라는 말이 웃음도, 공감도 일으키지 못할만큼 훌쩍 늙어버린 졸업 후 처음보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국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친구가 중국을 비난했다. 국민들을 생각하지 않는 나쁜 체제에 정치적 이익만 추구하는 문제 투성이 정부라 곧 분열하고 망하거라는 것이 요지였다. 맞은 편에서 이야기를 듣던 중국에서 10년 넘게 사업을 한 경험이 있는 친구는 일리있는 말이지만, 그리 간단하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나도 두 친구의 말에 동의하며 오래 전에 봤던 중국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이야기했다.
한국의 다큐 제작팀이 중국 여기저기를 다니며 인터뷰를 한 장면이 있었는데, 시골의 한 할아버지와 긴 인터뷰를 마치고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드렸다. 선물을 물끄러니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힘없이 느린 걸음으로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여권보다 조금 작은 얇은 수첩을 가지고 나왔다. 부슬부슬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펼쳐 제작진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은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헤지고 빛바랜 공산당원증이었다.
이 이야기를 해주며 맞은 편 친구에게 그 할아버지가 왜 인터뷰의 댓가를 받을 수 없다고 했는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이 장면에 담긴 할아버지의 신념으로 자리잡은 공산당원의 의미가 중국을 그냥 단순하게 나쁜 정부, 나쁜 나라라고 싸잡아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옆의 친구는 할아버지가 공산당원증을 보여주며 선물을 거절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아직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중국을 일으킨 중국의 힘이라고 했다. 그 뒤로 얼마 동안 중국 이야기를 하며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맞은 편의 친구는 다큐 제작진이 감동받았던 그 장면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친구가 말한 중국의 힘이 무엇인지 끝끝내 물어보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잠을 깼다. 어제 저녁 장례식장에서의 중국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가 왜 연유를 물어보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자신의 생각이 워낙 확고하니,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에는 관심도 궁금함도 없었기 때문인가 보다. 확증편향, 고집, 소신, 신념, 목표, 노력 같은 것은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믿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에게 긍정적일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때도 있다. 오랫 동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산 것 같다. 신념, 정신력, 의지, 열정, 노력 같은 것이 삶이 필수 요건, 전제라는 강박 같은 태도로 산 것 같다. 자신의 생각에 영구적으로 갇힌 사람이 많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에는 귀를 귀울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중국은 나쁜 나라라는 태그를 붙이고 온갖 사례를 끌어와 열변을 토하기만 하면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국제정세에 밝고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춘 지성인이 될거라 착각한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가장 쉽게 중독되는 것 같다. 생각이 반복되면 신념이 되고, 신념에 한 번 사로잡히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상상 속의 그럴듯한 관념들이 곧 자신의 실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타인도 그렇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출발 지점은 지금 나의 생각과 신념을 의심하는 자리다. 애써 정리해 겨우 자리 잡은 생각과 일상이 흔들릴 거라 걱정할 필요 없다. 스스로를 흔들 줄 알아야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근육을 키울 수 있으니까. 내 생각이라는 고시원에서 나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궁금한 것을 묻고 대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점이 새로운 삶의 스타트 라인이다. 새로움은 설렘과 즐거움이다. 어떤 누구와도,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주제로, 어떤 주장들을 주고받든 대화가 즐거우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도록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좀 더 즐겁게 대화하면 좋겠다. 상주가 된 친구는 지금 힘들게 살고 있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다음에는 더 나은 결과 있을 거라 믿는다. 현재의 생각이 자꾸만 미래로 빠져나가는 것이 문제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는 공부를 통해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의 진짜 삶을 다음으로 미루는 방식의 생각을 발전시켜왔다. 이런 방식의 사고는 개개인의 신념이 되어버린 듯 하다. 장례식장에서 생각했다. 인간에게 다음이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다음> 문제다. 공부든 재테크든 자기계발이든, 미래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준비만 해 온 삶이다. 준비는 그만하고 삶을 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