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교육

by 피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다. 다시 말해, 평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성향상 평등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은 자기 몫 이상의 자원을 차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자기 몫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까지 함부로 사용하면서 후대에 물려줘야 할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손쓸 도리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을 설득해서 이 세상은 우리가 함께 더불어서 살아가야 할 공간이라는 점을 일깨우면, 거기서부터 어느 정도 책임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캐스파 헨더슨(Caspar Henderson)




환경문제는 앙코르와트 석조물과 수백년된 스펑나무가 서로 뒤엉킨 상황같다. 환경문제는 개개의 삶과 욕망이라는 증식하는 뿌리와 뒤엉켜있기 때문에 풀기 어렵다. 15년 전에 환경교육에 미쳤었다. 취업교육은 돈을 많이 주니까 하고, 환경교육은 돈과 상관없이 했다. 강의를 열심히 많이 했던 시절이다. 환경교육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너무 아파 의식이 혼미해 도저히 운전할 수 없을 때 택시를 대절해서 경주를 다녀온 적도 있다. 분명 의식이 흐릿했는데 환경교육을 하는 동안에는 힘이 나는 신비한 체험도 했다. 강의료가 10만원이었고, 택시비로 18만원을 썼다. 환경교육강사양성과정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강의 파일이나 자료를 요청하면 누구에게나 자료를 보내주었다. 환경교육교과서 제작에도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환경교육과 연관된 모든 것은 나 자신까지도 공공재라고 믿었다. 환경교육에 관한 토론회도 많이 참석했다. <환경교육>이 아니라 <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환경교육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사회가 환경교육의 목표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예컨대,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가르침을 <살인방지교육>이라는 별도의 교육을 통해서만 가르쳐야 한다는 것 같았다. 외주화된 환경교육은 없어지고 환경교육의 메시지와 내용들이 자연스럽게 학교 교육의 일부분, 문화를 통한 삶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세상을 낭만적으로 보았나 보다. 그 당시 환경교육판은 환경교육진흥법 제정으로 확보되는 예산을 먹기 위한 사업 설계를 하는 이익 집단들의 그럴듯한 말잔치로보였다. 환경교육 자체에 대한 고민과 토론보다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환경교육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부족해 하나의 가치에만 집착해 다양성의 힘을 몰랐다. 경제라는 삶의 고귀한 가치를 삐딱하게만 본 탓 같다. 세월이 흘러 문제해결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과거의 나는 문제해결보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는 아쉬움도 한 몫하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체란 시작, 중간, 끝이 있는 것이라 했다.

끝을 낸다는 것은 시작과 중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가 시작인지, 중간인지 끝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마무리를 짓고 싶다. 시작한 일의 끝을 보고 싶다.


아직, 어느 정도의 책임감이 아직 남아 있나 보다.

우리가 그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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