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by 피라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과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 그렇다.그대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삶에는 수많은 고통스런 죽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그 모든 무상함의 대변자가 되고 옹호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니체




니체가 말한 변신을 '변화'로 읽어봅니다. 니체는 이성과 주체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시종일관 비판했는데, 지나친 믿음이 변화를 막고, 끝내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저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손쉬운 변화만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가 변화를 강조하지만, 그것을 통해 새로운 인격이나 주체가 되었다는 말을 과문해서인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힐링이라는 말도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장동석, 뉴필로소퍼 한국판 편집장




어제 점심, 곧 3조 매출 기업의 임원이 될 친구를 만났다. 일하며 그 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친구 역시 조직적 문제로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급승진했다가 꼬꾸라져 힘들어하다 다시 자리를 잡았다.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일로 책임져야 할 억울한 상황이 생겼을 때,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 점. 시련을 통해 마음을 비웠다는 점. 자기 과시나 인정받으려는 마음 없이 일 자체에만 몰입한다는 점. 자신이 에너지를 쏟는 대상을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는 점, 소위 말하는 성공에 별 관심 없다는 점 등이 있는 것 같다. 말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기란 어렵다. 조화와 균형을 잡으며 주관과 객관, 이상과 현실, 감정과 이성으로 서로 뒤엉킨 세상과 마음을 계속 조정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금융업계의 손꼽히는 리스크관리 전문가다. 친구가 말했다. 리스크는 줄이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리스크가 없는 삶은 바위같은 무생물의 삶에 가깝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은 최소한의 변화만으로 살아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변화는 리스크다. No Risk, No Profit이란 말은 No Risk, No Advance로 해석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인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No risk, No Life쯤이 아닐까?




생명의 세포는 스스로 해체되고, 스스로 재건하며 끝없이 변화를 주도하며 자신의 존재를 지켜낸다.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한 번 구성되면 여간해서는 해체와 재건을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변화가 두렵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대면할 용기가 부족해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의 세계에 더욱 매몰된다. 자신과 다른 생각, 다른 신념, 다른 취향, 다른 세계에 폐쇄적인 사람은 리스크도 적고 변화도 적다. 다양성과 다름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는다는 건 변화를 통한 기회를 연다는 뜻이다. 열린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열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과 자신에 대해 열려 있다는 건 변화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교육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배우고 성장하며 한 사람의 진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리스크는 변화를 이끄는 삶의 동기다.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재건하며 리모델링하는 삶을 만들어가야겠다. 부지런히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며 새로운 일부를 만들어내는 체세포처럼. 손톱 끝 피부 세포의 리스크 관리 방식 덕분에 오늘도 문제 없이 타이핑할 수 있다. 키보드에 부딪혀 먼지가 될 손 끝 피부 세포와 나의 운명은 똑같다. 우린 세상의 먼지 같은 존재다. 먼지라 하찮은 것이 아니라, 먼지도 대단하다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개념과 존재로부터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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