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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라

초등학교 때 뇌병변(그때는 소아마비라 불렀다.) 장애인 친구가 있었다. 한 반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때때로 하교길에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어떤 날은 친구 집에 놀러 가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3년때부터 그 친구와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때까지 이어진 것 같다. 친구는 정신은 멀쩡했지만, 몸이 불편했다. 온몸이 뒤틀려 걸음도 느리고, 말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발음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니 온 몸에 힘을 주고 한 마디 한 마디 원하는 소리가 나오도록 애쓰다 보니 친구의 목소리는 컸었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툭툭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잘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몇 달 지나니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좋았다. 그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그 친구처럼 정성을 담아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하는 친구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말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친구들은 대체로 시시껄렁한 말을 하기 일수였고 아무 말 잔치 같았다. 그 친구는 농담도 잘했지만 허투루 하는 말이 없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때는 디지털 사진과 달리 고민하고 심사숙고한 뒤에 한 컷 한 컷 정말 정성 들여 마음을 담아 셔터를 누르듯(필름값과 현상비를 아껴야 하니까), 그 친구의 말은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음 깊은 곳에서 꾹꾹 찍어내는 영혼의 타자기 같았다. 친구가 힘겹게 말하면, 나는 집중해서 이해한 말에 대해 내 생각을 쉽게 말했고, 친구는 내 말을 쉽게 이해하하고 다시 힘겹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과정이 무한 반복되었다. 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말과 문자로 뒤에는 맥락과 이면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 능동적 이해와 수동적 이해의 차이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대할때 어떤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도,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지만, 친구와 대화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저절로 알게 되었다. 친구는 타인의 도움에 민감했다. 친구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태도,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는 태도, 자신을 비장애인과는 다른 존재로 여기는 태도를 싫어했다. 그런 태도가 친구를 얼마나 속상하게 만드는지 알기에 나는 단 한 번도 친구가 불쌍하다거나, 도와주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 없다.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때때로 친구를 몰아붙이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도 나를 좋아했다. 그 친구와 소식이 끊어진지 오래되었다.


지난 목요일에 경북지역 장애인 학생 대상 모의면접을 다녀왔다.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나온 면접관 2명과 함께 27명의 장애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오후 내내 진행된 강행군이었는데, 면접이 끝난 뒤 잠시 시간을 내어 전체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따로 시간을 내어 달라고 부탁했다. 예정에 없던 질문과 대답의 시간까지 가지자고 또 제안을 해, 결국 예정시간보다 40분 넘게 늦게 마쳤다. 자기중심의 욕심 때문에 다른 면접관들과 진행측, 학생들까지 민폐를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하며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때 한 동안 잊고 있던 초등학교 장애인 친구가 떠올랐다. 난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 친구와의 어린 시절 추억 때문일까? 작년에 문득 관심이 생겨 <장애학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을까?


첫 배낭여행을 떠날때 기대가 컸었다. 여행을 통해 대단한 것을 얻고, 삶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 같은 기분. 여행에서 돌아오면 멋진 삶이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돌아와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여행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여행의 효용을 생각하면 왜 떠났는지 의문스러웠다. 세월이 더 흐르고 보니 여행 때문에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하나 둘 알게 되었다. 일상에서의 작은 선택들, 태도들에 여행의 경험들이 스며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슬비에 옷이 젖듯 일상의 그런 작은 영향들이 삶의 큰 방향을 이끌고 큰 성취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모든 경험은 중요하다. 경험 자체보다 경험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경험은 이미 흘러갔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경험도 한정적이지만, 경험에 대한 태도를 통해 얼마든지 지난 경험을 재구성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며 앞으로의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릴 적 힘겹게 말하던 친구와 이야기하던 경험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내 삶을 많이 바꾸었을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더 많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여행과 독서는 이와 비슷한 것 같다. 당장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몸과 마음에 스며드들어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세월이 쌓이면 삶이 바뀌는 것. 그런 것이 교육의 개념 같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모습 같다. 어릴 적 그 친구와 함께 했던 경험의 의미를 알게 되기까지 40년 걸렸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삶은 살아볼만 하다. 세월의 힘만으로도 얻는 것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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