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될 지, 아이가 좀 더 크면 물어보기도 한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는 대답에 "재미있는 사람요.", "친절한 사람요", "행복한 사람요."와 같은 철학적 대답을 하는 아이도 간혹 있을 테지만, 대부분은 직업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직업이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까의 문제다.
교육 기본법에는 교육의 목적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인간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윤택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은 있어야 한다. 몸을 뉘어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지 않고 잠을 잘 수 있는 공간과 하루 한 끼의 식사가 최소한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고, 강남의 평범한 아파트에 살며 통장 잔고에 신경 쓰지 않고 쇼핑과 외식을 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최소한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현실에서 용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이 유지된다. 인간적 모멸감을 견디며 최저임금을 받아도 버티며 출근하는 사람도 있고, 억대 월급을 받아도 인센티브가 자신 기준보다 작아 뉴스 클릭하듯 쉽게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세상의 다양한 직업 만큼이나 자신의 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태도가 있다.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가 좋은 직업을 가지길 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좋은 직업이 무엇인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두 가지 공통점은 있을 것 같다. 경제적 기반인 '높은 임금"과 직업적 보람인 '가치 실현' 말이다. 학생들은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일단 공부를 하고, 일단 대학을 가고, 일단 취업 준비를 한다. 공부의 필연적 귀결은 직업이다. 경제 활동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을 하지 않는 직업은 없다. 특정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 직업을 통해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검사가 되고, 택배노동자가 되고, 대기업의 프로그래머가 되고, 공무원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좌절과 성취,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 때로는 멀쩡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기도 한다. 어떻게 일할까의 문제는 한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직업을 가지기 전까지는 어떤 직업을 가질까의 문제가 중요한 것처럼 여겨기지만, 직업을 가지고 난 뒤에는 어떻게 일할까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일하는지>에 따라 직조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일할까?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과정이다. 공부의 끝자락에서 직업을 얻고 일을 통해 가치, 보람, 성취, 행복을 느끼는 삶을 저마다 원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과 어떻게 일해야 좋은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일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다. 시키는 일만 하는 기능적인 일은 AI와 기계가 대체해 인간의 직업으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정형화된 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인간의 직업이 되고 있다. 직업적 가치란 인간과 연결되는 가치다. 일의 대상은 인간이다. 지구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일의 대상일 수 있지만, 그 대상이 다시 인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야 일의 대상이 된다. 비인간적 존재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인간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이해도 확장된다. 인간의 일은 인간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세상 전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린 서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철학이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의 다양한 직업, 다양한 일과 연결되면 좋겠다.
일단 성적을 올리면 어떻게 되겠지, 일단 대학에 가면 어떻게 되겠지, 일단 취업하면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삶을 갈아 넣는 막연한 태도보다는 그 이후를 생각하면 좋겠다. 일이 도대체 무엇이며, 왜 일하며,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배우면 좋겠다. 그 배움 과정의 본질은 한 인간이 생각하고 표현하고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직업과 일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가치를 깊게 파고들면 교육 본연의 목적인 이상적 가치와 만난다고 생각한다. <일>에 대한 이해가 둘을 연결 지을 수 있다고 믿는다.
20년 가까이 학생들에게 일을 말해왔지만, 나 또한 피상적인 접근으로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말했다. 나 스스로 배울 것이 없으니 재미가 없어서 한 동안 떠나기도 했다. 자세를 가다듬고 일에 대해서 깊고 넓게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최근 3년의 일이다. 문득 생각이 든다.학생들이 공부가 재미없는 이유는 일 때문은 아닐까? 공부하는 이유는 나중에 일을 하기 위해서인데, 공부만 냅다 시키고, 일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으니 , 냉소적 태도로 바라보고, 흥미와 관심이 떨어져 재미없는 것은 아닐까? 공부와 일을 연결시켜주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방식이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