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프리오가 출연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영화를 보면 자신이 살던 곳에서 추방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은 사형선고와 맞먹는 중형으로 묘사된다. 추방이나 유배를 사회적 죽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적 맥락은 다들 이해하더라도,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는 주인공이 왜 그토록 괴로워하기만 해야 하는지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사랑하는 줄리엣과 헤어졌기 때문에 느끼는 괴로움이라면 둘이서 마을을 떠나 새출발 하면 될 일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다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쫓겨나와 먹을 것도 쉴 곳도 없다는 먹고 사는 문제라면 공감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20여년전, 강진의 다산 초당에 갔을때도 비슷한 의문이 떠올랐다. 유배를 떠나와 강제 노역을 한 것도 아니고, 의식주를 걱정해야 할 상황도 아니고, 한적한 곳에서의 숙식과 자유시간 제공이 그토록 중한 형벌일까라는 의문이었다. 깡촌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을 터이고, 아침 저녁 문안인사와 함께 보살핌을 받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고, 산책하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삶은 현대인의 기준으로는 대부분 꿈꾸는 버킷 리스트 아닌가 싶다. 인적이 드물다는 점은 있지만, 공기 좋고 물맑은 곳에 위치한 풍광 좋은 별장에서 경제적 걱정없이 유유자적하는 일상은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꿀 것 같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뉴스쿨의 문화 미디어학과 교수인 케이트 아이크혼(Kate Eichhorn)은 현대인의 삶, 특히 청소년들의 삶을 통찰력 있게 설명한다. 그는 '부모들은 보통 자기 자녀가 디지털 기기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소셜 미디어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책을 쓰고 나서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에 중독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은 평판 관리에 중독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좋아요와 싫어요로 대변되는 나와 상대에 대한 평판이 SNS의 핵심 동력이다. 양상의 차이일 뿐,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은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영향력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내게 도움되는 평판이 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속감과 평판은 궤를 같이 한다. 누군가를 칭찬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무언가에 소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듯하다. 좋은 평판은 곧 사회적 인정이다. 아이들이 SNS에 집착하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 추방과 유배를 사회적 죽음이라 여기는 마음과 비슷한 듯 하다. 내가 속하고 싶은 곳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의 좋아요와 싫어요에 영향받는 점에서 1801년 유배길에 나선 정약용의 삶이나, 2022년 틈만나면(억지로 틈을 만들어) 스마트폰만 자꾸 들여다보는 우리의 삶은 비슷한 것 같다.
고객의 후기 때문에 자살한 분식집 사장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강렬한 자화상이다. 좋아요와 싫어요의 적절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평판의 결과물인 합격과 불합격 때문에 울고 웃는 학생과 청년들. 사회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누군가의 평판 때문에 할말을 못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직장인. 스스로의 평판이라는 덫에 갇힌 사람들, 타인의 관심을 얻어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유튜버들. 온갖 유형의 좋아요와 싫어요 사이에서 기뻐하고 절망하고, 분노하고 공감을 얻고, 의욕을 얻고 무기력해지는 우리 일상의 순간들과 후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까지 끊어야 하는 소상공인의 처절한 일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동굴 속에서 살던 시절이나, 자동차가 굴러가기 시작하던 때나, QR코드로 나를 보여주는 시대나 타인의 평판은 똑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이상 평판이 타인과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타인을 위해 좋아요와 싫어요를 클릭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