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제갈량이라는 말이 있다. 일이 생기고 난 뒤에, 분석을 한답시고, "그 봐 내가 뭐랬어? 내가 그렇게 된다고 했지?",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이것 때문이야..."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일상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일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이유를 찾는다. 취업에 실패하고 삶이 힘든 이유를 스펙과 부모의 경제력에서 찾는 것이나,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든 이유를 전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때문이라고 여기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그럴듯한 인과관계에 매몰되면 삶이 점점 꼬일 수 있다.
취업 커뮤니티 등에 올라오는 취업 후기를 보면 염려스러운 것들이 종종 보인다. '이렇게 했고, 합격했다.'라는 후기를 보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취준생들은 '아.... 저렇게 하면 합격되는구나. 저렇게 준비를 하고, 저런 스펙을 쌓고, 저렇게 자소서를 쓰고, 저렇게 면접을 보면 합격하는구나!'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은 대체로 틀렸다. 대표적인 사후제갈량이기 때문이다. 많이 뽑을 때는 한 해에 3000명 가까운 면접자를 만났던 내게, 누군가 그 사람을 왜 뽑았냐며 진짜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한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면접을 보면서, 면접 사정표에 열심히 메모를 하고, 항목별로 점수를 기업해도, 객관성, 공정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도 사실 모두 단편적, 즉흥적, 주관적 판단들이다. 그런 채용의 과정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거짓말이거나, 무지하거나.
이렇게 하면 반드시 합격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신만의 진로를 반드시 찾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척하며 다른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 취업뿐 아니다. 수많은 자기개발의 정보들도 마찬가지다. 자기개발뿐 아니다. 주식투자, 재테크, 돈버는 법, 성공하는 법 등 수많은 정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일반적 원리라 말하며 돈벌이와 연관시키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LG디스플레이에 있을 때, 퇴직면담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퇴직 희망자를 현업에서 1차 면담을 하고, 인사팀과 또 면담을 하는 제도였다. 번거로운 퇴직면담 과정을 통해 퇴직자를 줄이고, 현업부서의 문제를 파악하는 등 일종의 모니터링이 목적이었다. 내가 맡은 생산직 사원들의 경우 퇴직률이 25%에 달했다. 일년에 1천명을 뽑으면 250명이 퇴직했다는 말이다. 여사원 평균 근속률이 1년 7개월이었다. 오랜 시간 지난 지금도 그 수치를 기억하는 이유는, 퇴직 직전까지 만들고 있었던 보고서의 제목이 <여사원 퇴직률 감소방안>이었기 때문이다.
퇴직 면담을 하러 온 여사원들은 대부분 내가 직접 뽑는 이들이었다. 얼마전까지 이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자신 인생 일생일대의 최고의 기회고 삶의 모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던 이들이 얼마 뒤에는, 이 회사를 떠나야 자신의 인생이 나아질거라는 확신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변화이긴 하지만, 일면 놀라운 반전이다. 자신만의 확신으로 회사를 떠난 후에 삶이 나락으로 빠진 이들도 있고, 성취하는 삶을 사는 이들도 있었다. 반대로 회사에 남은 남아 반폐인이 된 삶을 사는 이들도 있었고, 너무나 행복하다 여기는 이들도 있다. 모두 자신의 생각과 선택이 만든 결과다. 하지만, 나를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과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마치 합격자들이 "이렇게 대답해서 합격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한 사람은 진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조건의 문제도 더더욱 아니다. 한 사람이 직업을 가지고, 꿈을 성취하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인정을 받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적성을 찾고, 그 일을 찾고, 그 일을 잘해낸다와 같은 그럴듯한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진로는 직업에 관한 문제고, 직업은 일에 관한 문제다. 한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삶을 살것인가의 문제다. 어려운 문제다. 이 어려운 문제를, 직무적성검사, 스펙, 합격팁, 보고서 작성법, 직장생활팁 등과 같은 그럴듯한 단편적 정보들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은 무수히 떠도는 그럴듯한 정보들일지도 모른다. 이러면 된다, 저러면 안된다고 결론 내리는 수많은 단정적 판단의 알고리즘의 피해자는 우리 자신이다. 현명함과 지혜라는 옷을 입은 정보가 우리 삶을 좀먹는다. 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중요하다. 보이스피싱에 속는 사람도 자신 삶의 모든 지혜와 지식을 총동원해서 자신 삶을 위한 최선의 판단과 선택을 한 결과라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그럴듯한 정보, 그럴듯한 이야기, 그럴듯한 논리에 보이스피싱에 속듯, 나도 더 나은 삶을 위한 그럴듯한 정보에 속아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매혹하는 그럴듯함이 삶의 리스크가 되는 일은 너무나 많다. 그 그럴듯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아가는 통찰이 필요하다. 정보화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