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을 버스로 장거리 이동한 사람들은 알 거다. 그 길에는 온갖 사람들과 온갖 동물들도 함께 다닌다는 걸. 그래서 버스기사는 쉴 세 없이 사람과 동물을 향해 경적을 울리며 달린다. 제발 좀 길에서 비켜나라고. 부다가야에서 다르질링으로 가기 위해 로컬 버스를 탔다. 자리가 없어 운전사 옆 앞자리에 앉았는데 6시간 넘게 공격적으로 울려대는 경적 소리를 들었다. 괴로운 탓도 있었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뚜렷히 그 장면과 느낌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버스 안에서 나는 줄곧 울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기 전 부다가야에서 3주 정도 머물렀다. 그때 미얀마에서 유학 온 스님 두 명과 친해졌다. 한 명은 영어를 유창하게 했고, 한 명은 많이 서툴렀다. 우리는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한국의 스님과 달랐다. 그들은 내가 만나본 어떤 사람들보다 유쾌하고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한국 스님은 왠지 진지하고, 감히 범접하기 힘든 느낌이 많은데, 그들은 처음부터 어릴적 소꿉 친구같았다. <근원에 머물기>에서 비베까난다가 종교인은 명랑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매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단지 나이가 조금 많다는 이유로 <형>이라 불렀다. 브라더를 한국 말로 뭐라고 하는지 물어보더니, 그 뒤로는 계속 형이라고 불렀다.
그때 나는 담배를 매일 폈다. 그들은 건강을 위해서 담배를 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유학길, 나는 여행길에서 잠시 만난 사이지만, 진정으로 나의 건강과 삶을 걱정하고 잘되길 바라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진심은 상대가 진심인지 아닌지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진심을 대해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은 특히나 내가 담배를 안 피면 좋겠다고 자주 말했다.
헤어질때가 되었다. 나는 여행자고 그들은 머무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다르질링으로 향하는 여행길을 떠나기로 하고, 전날 그들이 손수 만들어준 미얀마 음식을 먹고 어둠이 질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음날 오전 10시경, 그들은 버스 정류장으로 배웅을 나왔다. 이별의 포옹을 하고, 버스에 오를때 내 손을 잡더니 하얀 비닐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엉겁결에 움켜쥐고 버스를 탔고, 창가로 손을 서로 흔들며 멀어지는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보았다.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비닐 봉지 안을 보았다. 담배 3갑이 들어 있었다.
그토록 담배를 싫어했는데, 담배를 사주다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경적을 울려대며 정신없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촉촉한 눈가 옆으로 눈물이 고이면 닦고 또 닦기를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나온다.
눈물의 이유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의 깊고 넓은 정신의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한 탓일게다.
살아 생전 그들을 다시 만나 웃고 떠들며 신나게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는 버스 안에서 울었던 이야기부터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리라.
인간은 가장 인간다울때 가장 고귀해진다는 걸 삶으로 보여준 두 사람.
에슈리아와 난독. 두 스님의 이름이다.
미얀마에 평화가 깃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