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by 피라

1998년, 예루살렘에 한 달 가량 머물렀다.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카이로 공항에 떨어져 발길 닿는대로 떠돌다. 한 달만에 도착한 곳이 예루살렘이다. 유명한 도시니까 2,3일 슬쩍 구경하다 목적지인 크레타로 가려했다.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었다. 종교적인 이유도 아니다. 28살, 졸업을 1년 앞둔 내게 비춰진 예루살렘은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 이유는 갈등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갈등의 도시다. 2022년 전에 살았던 한 청년의 삶과 생각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로 다투고, 반목하고, 죽이고, 미워하는 갈등이 잉태된 도시.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예수는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 그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유 때문에 인류는 비슷한 길을 걸어왔을 것 같다. 한 대상에 대한 생각과 해석의 차이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깊고 오랜 갈등을 꽃피우는 나무가 자라난 도시가 내가 이해한 예루살렘이었다.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의 화두는 '한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이었다. 십자기를 지고 걸었다던 비아 돌로로사 돌계단을 하루에 수십 번 오르내리며 '다름'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는 풀리지 않는 생각을 안고 하이파라는 항구 도시로 가야했다. 하이파에 가야 크레타로 가는 배를 탈 수 있었다. 크레타는 여행의 목적지였다. 크레타에 가면 졸업 후 어떤 진로를 선택해야 할 지 알 것 같았다.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친구들이 생겼다. 고맙게도 그 중 2명이 나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하이파로 가 준다고 했다. 우리는 히치하이킹을 하며 이틀인가, 사흘만에 하이파에 도착했다. 그 중 한 명이 영화 '편지'의 원작자 권형술작가다. 내가 글의 세계에 빠져든 건 그 형의 영향이 크다. 하이파에 고작 몇 시간 머물렀을 뿐이지만, 내게 하이파라는 도시는 젊은 날의 고민과 방황, 만남과 이별, 진로와 인생이 담긴 내 청춘을 상징하는 도시다.


하이파,


새뮤얼 보울스가 쓴 도덕경제학이라는 책에 하이파에 있는 한 유치원 이야기가 나온다. 유치원에서는 지각을 줄이기 위해 지각하는 부모에게 벌금을 매겼다. 놀랍게도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다른 유치원보다 지각이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인간의 행동에 보상(인센티브)와 처벌이 주어지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리라 상식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감히 나를 돈으로 매수하려고 하다니'라는 생각에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새무얼 보울스의 주장이다. 드라마의 전형적 장면이 있다. 남친의 엄마가 긴히 할 말이 있다며 여자 주인공을 불러낸다. 카페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눈다. 남친의 엄마가 돈봉투를 스스르 밀며 말한다. "이거 받고 앞으로 우리 아들 만나지마!"라고. 그때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하거나, 고민하며 헤어진다. 새뮤얼 보울스의 도덕 경제학을 아직 읽는 중이라 뒷 내용은 모르지만, 한국 드라마의 닳고 닳은 장면이 주장의 핵심으로 보인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돈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우리 주위에도 많다.


웹 사이트를 하나 만들 계획이다. 접속자의 활동에 대해 금전적인 보상도 주어지겠지만, 인간의 선한 의지로 작동하는 포탈 사이트를 오랫 동안 꿈 꿔 왔다. 복잡하지 않게, 최대한 단순하게 구성할 생각이다. 나의 삶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여해 만들어가는 사이트. 갈등이 삶을 움직이는 에너지로 바꾸는 사이트. 세상의 갈등의 모이고 모여서 삶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이트.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 봐!!~~ 되지?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 봐~ 되잖아!!" 만약 계획하는 사이트가 성공한다면 그건 이전에 숱하게 고민하고 시도했던 타인들의 노력 덕분이다. 실패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의 선한 의지가 담긴 시도에 도움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해볼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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