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는 백화점.
경험을 쇼핑하는 곳
찍고 먹고 사고
쇼윈도 물건처럼 진열된 풍경들을
소유하려고 눈알을 굴리는 각국의 고객님들,
지하철처럼 왔다갔다만 하지
부다페스트가 한 눈에 보이는 어부의 성채로 오르는 길
마지막 계단 난간 위
홀로 앉아 꼼짝 않는 여행자
다뉴브강에 지난 삶을 흘려보내는 중일까
부다페스트 거리 한구석에 다가올 삶을 꾸리는 중일까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오르는 사람 없고, 내려가는 사람만 스칠 때
40대 일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어
열심히 살았다고, 참 열심히 살았다고
열심히 공부했고, 좋은 대학에 갔고, 부러운 결혼을 했고,
가정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았다고.
보름 전에 이혼했고, 남은 건 몸뚱어리 하나
평생 매달려왔던 모든 것을 잃고,
다뉴브강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지난 삶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난생 처음의 자유
백지가 된 삶이 설렌다며
쓸쓸히 웃었어
말을 들던 20대 여행자는 19년이 흐른 뒤
그 사람의 나이가 되어 그때 그 자리에 앉았어
해가 넘어가니,
잊고 있었던 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어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행복한 어른이 되라는 사회는 없어지면 좋겠어
지금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어
부다와 페스트를 가르는 다뉴브강이 내려다보이는
어부의 성채로 오르는 계단, 계단, 계단
그 끝자락 난간에 한 여행자가 앉아 있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풍경처럼.
같은 모습으로 흐르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강물이 흐른 적은 없었네
강을 만드는 건 비
세상의 모든 사연들이 단 한 번도 똑같았던 적이 없었듯이,
단 한 번도 똑같은 비가 내린 적은 없었네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여행자
혼잣말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지
부딪히고 깨지고 쓰러져도
나만의 삶을 살거야
이제 시작이야
삶이 시작이 아니었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어
단지 모르고 있었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