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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

by 피라

빅토리아시대에 식민지 커피농장에서 고통 받고 죽어간 사람들 때문일까?

남미원주민들이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하게 만들려고 씹게 했던 각성제 코카잎처럼,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일을 더 하게 하려고 커피를 마시게 했기 때문일까?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단지 좀 더 자유롭고 싶었을까?


커피를 끊은 지 6년째,

루앙프라방에서 아침 첫 산책을 나왔을 때 하얀 연기를 봤어


시샤방뱅 거리 끄트머리 길가, 어린 소녀가 몽키 바나나를 석쇠에 올려 굽고 있었어.

옆 조그만 수레에서 커피 파는 라오스 남자가 활짝 웃었어.

초등학교 책상보다 작은 박스수레 뒤로 아이를 업은 아내와 남편이 서 있었어.

조그만 커피 상자가 가족 생계의 전부로 보였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여행자는 시샤방뱅 거리를 하루에 몇 번씩 거닐었고,

커피 파는 남편은 그때마다 활짝 미소 지었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여행자도 마주보며 함께 웃었지.


커피를 팔려는 웃음인지, 순수한 웃음인지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낯선 곳에서 서로 알아보고 나누는 미소가 좋았으니까.


끊은 지 오래라, 다른 것을 사주고 싶어도 커피만 팔고 있었어.

괜히 미안해서 그 길을 지날 때는 건너편으로 다녔는데,

지날 즈음에 슬쩍 쳐다보면 그때마다 건너편에서 웃어주는 거야.

커피가 하도 팔리지 않아 지나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


4일째 되는 날, 고민 끝에,

먼저 다가가 활짝 웃고 커피 한 잔을 달라고 했지.

남편은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어.

벌써 친구가 된 것 같았지.


커피 상자를 사이에 두고, 선채로 몇 마디를 나누었고, 커피를 들고 거리를 어슬렁거렸어.

커피장사를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꼬박 한데.

피곤하면 커피좌판 뒤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잠시 눈을 붙이기도 한데.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여행자는 그에게 다가가 커피 한 잔을 샀어.

매일매일,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


남편은 단골손님이 생겨서 좋았던지 커피를 점점 많이 주기 시작했어.

조금만 달라고 했지만, 웃으면서 괜찮다며 항상 넘치도록 담아 주었어.


그렇게 매일 커피를 사서 맞은 편 시장 통 입구 길가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어.

커피향을 느끼며 발치로 다가오는 거리의 닭들에게 이름도 붙여 주었지.

40일이 넘도록 그렇게 커피를 사 마셨지.


루앙프라방을 떠나기 전날,

커피를 마시지 않던 여행자와 커피 파는 남편은 작별인사를 하고 포옹을 했어.


살던 곳으로 돌아온 여행자는 매일매일 커피가 생각났어.

싫어하던 커피중독자가 된 것이지.


몇 년 후, 여행자는 어쩌다 커피를 마셔.

세월이 흐를수록 커피추억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이 되어갔어.

따뜻한 추억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떠오르지.


그때,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루앙프라방의 추억도, 그 친구에 대한 추억도 없었을 테니,

참 다행이야.


커피를 싫어했던 여행자는,

뭔가에 마음이 닫혀 있으면 생각하곤 해


이것도 <루앙프라방의 커피>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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