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카엔타에서 비포장도로로 40분
멀리서 보면 울퉁불퉁 평원, 가까이서 보면 척박한 사막
관목 듬성듬성한 땅에 어쩌다 시름겨운 풀들
사방 지평선 끝까지 울퉁불퉁 붉은 바위언덕만 보이는 곳
움직이는 것이라곤 지평선 아래 실낱같은 비포장 길
먼지 피우며 하루 두 번 지나가는 개미 같은 노란 스쿨버스
사람은커녕 버려진 건물조각 하나 없는 땅
망망대해의 표류한 조각배 하나처럼,
먼지로 변한 트레일러 옆에 진흙으로 손수 지은 호간 하나
야윈 개 한 마리가 80대 인디언 노부부와 함께 살지
가장 가까운 이웃은 픽업을 타고 20분
나바호족 원주민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바호 말만 하지.
부모를 죽게 한 자들의 언어라 영어는 배우지 않았어
다운타운의 젊은이들은 나바호 말을 할 줄 몰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는 데는 영어가 필요하니까
백인들이 만들어준 무기력의 감옥이 싫어서일까
조상들의 삶과 터전을 불태운 문명이 싫어서일까
부부는 오래전부터 황량한 외딴 곳에서 살고 있네.
전기도 없어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고,
이른 새벽에 광화문 촛불 같은 별들을 봐.
하루 중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일은,
해질녘의 오렌지 장밋빛 황홀한 노을을 보는 것
평생을 봤지만 마음이 설렌데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같은 노을은 없었지
나바호 말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노을 같아
흙으로 지은 집속에서 늙은이가 흙으로 돌아가면
오렌지 빛 마지막 나바호 말도 함께 묻히겠지
다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르다는 이유로,
편견으로,
묻혔고, 묻히고 있는 이야기들
정의롭지 못한 역사와 탐욕과 무지들도
흙으로 돌아갔으면.
쓸쓸히 바라보던 아리조나 광야의 노을이
세상을 불태워주기를.
분노와 부끄러움, 무기력을 태워주었으면.
숯덩이처럼 새까만 밤이 오기를
무기력의 사막에서도 연보라색 들꽃 하나를 보았어.
가장 어두운 새벽에 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