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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자 마을

by 피라

동구 밖 낯선 이방인을 물끄러미 보고는,

뒷걸음질 치다 총총 사라진 꼬마


다시 나타난 아이, 주춤주춤 다가와

손을 내밀더래

사과 하나

처음 본 낯선 여행자에게

선물을 내미는 꼬마들이 살던 마을


파키스탄 북부의 훈자.

가고 싶다 마음먹은 지 15년째

사과를 볼 때마다 훈자를 상상하네

갑사 아랫마을 여관에서 만난 할아버지

오랫동안 인도에 있다는 나비 계곡에 가고 싶었데

10년 동안 그곳을 상상하고 나니까,

지금은 아니래.

이미 가본 듯 하데

아름다운 나비의 계곡에서 사는 듯

할아버지가 웃으면 나비들이 춤을 추지


머나먼 곳 나비들이 노인의 가슴에 영원한 둥지를 틀어

팔랑이는 할아버지의 미소를 떠올리며

나비의 계곡을 상상하네

치앙마이에서만 꼼짝 않고 머문 60일.

빠이에 갈까 말까 한 참 고민했지


이제 많이 변했겠지

가볼걸

괜찮아

여행자들이 가고 싶은 곳으로 알려진다는 건

사과를 내밀던 아이들이 빈손을 내민다는 뜻

꼬마는 빈손을 내밀며 넌 부자고, 난 가난하다 말하지

여행자는 아이들의 손에 공허한 실망을 쥐어주지

여행자도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면 빈손을 내밀지


주식, 부동산 투기도 하며 넌 부자고 난 가난하다 말하지

대박을 상상하며 세상에 빈손을 내밀어

가고 싶어도 가지 않는 곳이 주름처럼 늘어나


오랫동안 생각하고 상상하다보면

가지 않았기 때문에 더 선명하고, 가슴에 오래오래 남는 곳들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 것들이 늘어나면

어른이 된 거라 하지


그런 어른 되기 싫었는데....

오늘도

주렁주렁 사과 열린 훈자마을 어귀에 서 있어

꼬마가 다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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