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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가야

by 피라

단지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해

기록적인 더위 때문에 델리에서 수백 명이 죽어간다는 뉴스가 세계에 퍼지고 있을 때,

델리 아닌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모든 것은 서울 중심이니까.

지진이 나도 서울에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가 우선인 세상이니까,

이상한 뉴스 때문에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들도 서울에 사는 것처럼 착각하지


델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을 때,

1000킬로 떨어진 부다가야에도 더위 때문에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어

그 해, 여름이 오기 전,

두 명의 미얀마 스님이 공부하러 부다가야로 왔어

방이 2개 있는 오래된 2층 벽돌건물의 2층에 거처를 마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름이 닥쳤어.

처음에는 피로하고 입맛이 떨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빠져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었어.

낮 동안 돌솥처럼 데워진 옥상 바닥이 바로 천장이라

밤에도 낮에도 잠을 잘 수 없었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부채대용인 책받침과 물수건이 다였어.

바람이 부는 날은 바깥의 그늘이 살만했는데,

바람이 없는 날은 바깥은 오븐, 집안은 찜통이었어.

그곳은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도보다 시원한 나라에서 온 둘은

방에 꼼짝도 못하고 나란히 누워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만 했었데.


그 끔찍한 여름의 고비가 지나갈 무렵,

지친 한 여행자가 부다가야에 왔어.

싯달타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보리수 그늘이 필요했던 거지.


아쇼카 왕이 2300년 전에 세웠다는 벽돌로 만든 거대한 탑 모양의 사원 뒤에,

2800년 전 싯달타에게 그늘을 드리웠던 그 보리수의 뿌리에서 자랐다는 큰 보리수가 있어.

여행자는 아침저녁 하루 두 번 마하보디 사원을 찾아,

그 보리수 뒤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다 가곤 했어.

두 미얀마 스님도 아침저녁으로 두 번 그 보리수를 찾았는데,

그때마다 여행자와 스님은 종종 마주쳤지.

일주일쯤 후에는 말은 나누지 않아도 이미 서로 친구가 된 것 같았어.

그 젊은 미얀마 스님들은 뭐랄까?

비베까난다의 <모든 종교는 명랑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수행자였어.

여행자가 여태 만나 본 사람들 중에 가장 훌륭했으니까.

자신들이 진리를 찾고 수행을 한다는 걸 티끌만큼도 표내지 않는 그런 훌륭함.

둘은 유쾌했고, 마음에 걸림이 없었고, 누구든 도와주고, 무엇에나 열려 있어,

곁에만 있어도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들이었어.

29살 스님은 에슈리아, 25살 스님의 이름은 난독이었어.

여행자와 두 스님은 친구가 되었어.

식당에서, 찻집에서, 여행자가 머무는 티벳사원에서 함께 이야기했지.

두 스님의 자취방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았어.


두 나라의 정치, 사회, 좋아하는 연예인, 싯달타와 깨달음, 부다가야의 생활, 앞으로의 계획, 꿈 등 세상의 모든 주제를 넘나들며 즐겁게 생각을 나눴어.

여행자는 항상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버릇이 있었어.

에슈리아는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의 생각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어.

뭐든 웃으며 받아들이지만 자신은 진흙에 핀 연꽃같은 사람이었어.

그런 그가 하나 싫어하는 것이 있었어.

그건 담배였는데, 여행자의 건강을 위해 피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자주 말했어.

에슈리아는 여행자를 형이라고 불렀어. 그만큼 형제처럼 아끼고 사랑했다는 뜻이겠지.

삶도 때가 되면 세상과 이별해야 하듯,

여행자도 그 때가 되면 떠나야 하지.

아쉬워도 떠나는 게 삶이고 여행이야.

이 세상을 잘 떠나는 것이 삶의 목표이듯.

헤어지는 날 저녁,

두 스님은 미얀마 전통음식을 정성껏 마련했고,

모두 모여 사진을 찍고, 깔깔거리며 맛있게 먹었어.

저녁을 맛있게 먹고, 건물 옆 공터에서 바람을 쐬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지.

이별의 슬픔을 감추려는 듯 더 떠들고 더 크게 웃었기 때문일까?

그날은 어느 날보다 더 행복했어.

헤어지는 날 오전,

여행자는 에슈리아, 난독과 뜨거운 포옹을 하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하고 고개를 숙여 처음으로 예를 갖춰 마지막 인사를 했어.

버스에 올라타, 창가에서 손을 흔드는데,

에슈리아가 손을 올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주는 거야.


손을 더듬어 봉지 안을 봤어.

담배 두 갑이었어.

담배라니.

이별 선물이,

몇 번이나 끊었으면 좋겠다 말하던 담배라니.

먼 길 떠나는 여행에 꼭 필요할 것 같으니까,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도움이 될까봐,

여행길 어디선가 담배가 없어 안절부절 못할까봐.

상대를 위해서,

가장 싫어하는 걸 가장 소중한 선물로 줄 생각하다니.

울었어.

여행자는 담배를 손에 꼭 쥐고,

울었어.

버스가 울퉁불퉁한 길에 덜컹거려도,

경적을 시끄럽게 울려대도,

여행자는 느끼지도 듣지도 못하고,

계속 울었어.


버스는 계속 달렸고, 여행자가 내린 후에도,

버스는 계속 달렸어.

버스에서 내린 지 너무 오래된 탓일까?

여행자의 기억도 느낌도 점점 옅어졌어.


8년쯤 지난 어느 날,

부다가야의 추억이 담긴 빛바랜 사진 두 장을 발견했어.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잘 보이는 책장에 세워 두었지.

한 장은 마하보디 사원에서 다함께 찍었고,

다른 한 장은,

집 옆 공터인데, 에슈리아는 자전거를 타고 있고,

난독은 팔짱을 끼고 하늘을 보고 있는 장면이었어.

어두운 저녁에 대충 우연히 찍은 듯 구도가 엉망인 사진이었어.

바쁜 일상은 책장에 세워진 사진도 볼 여유가 없었어.

헤어진 지 11년 후,

여행자가 사는 곳의 여름은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했어.

숨 막히는 더위 때문이었을까?
오래전 그 날 저녁 부다가야에서 사진을 찍을 때의 상황이 떠올랐어.

에슈리아가 자전거를 타며 말없이 공터를 계속 뱅뱅 돌고 있는 게

좀 이상하다 생각하며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난거야.

어두웠던 그날 저녁,

둘은 울고 있었던 거야.

난독은 눈물이 볼에 흐르지 않도록 눈을 껌뻑이며 하늘을 보고 있었고,

에슈리아는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자전거를 멈추지 않고 공터를 계속 돌고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여행자는

멀찍이 떨어져서 무심코 셔터를 눌렀던 거고.

그때 그 소중한 만남과 헤어짐을 간직한,

사진 한 장에 담긴 뜻을 알기까지 11년이 걸렸어.

둘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우린 형제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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