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읽지 못한 편지가 있어.
졸업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
여행을 하다 보면 답을 찾을 것 같았어.
그래서 떠났어.
쓰러질 듯 더웠던 1998년 여름의 카이로에서는,
아직 마주하지도 않은 다가올 삶의 답을 찾는 문제보다,
생수 한 병의 진짜 가격이 얼마인지부터 알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했지.
삶의 답을 찾기는커녕 문제를 마주할 겨를도 없이,
낯선 곳에서 밀려드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길 잃고 지친 여행자에게 그가 다가왔지.
그의 이름은 알라였어.
알라는 말했어.
혼자서 생각만 하지 말고,
같이 얘기를 나누자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거리를 걷고, 교외에도 가보고, 친구 집에도, 자기 집에도 가보자고.
며칠 뒤 헤어지는 순간에도 여행자는 머리를 굴리고 있었어.
알라의 호의가 고맙기도 했지만,
혹시나 뭔가를 원하는 다른 목적이 있지나 않을까 경계도 했어.
한국에서 자란 여행자는 상대의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대의 의도를 분석하는 일이 훨씬 더 익숙했으니까.
헤어지는 전날 밤,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옥상에 나란히 누웠을 때,
알라는 말했어.
“미래? 삶의 답? 그런 것은 없어. 미래를 생각하지 마, 현재만 살아.”
그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어.
‘알라는 생각이 부족하구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삶이 어떻게 있을 수 있지?’
알라는 또 말했어.
“나를 봐. 나는 오로지 현재만 살아, 이 순간만 산다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
18년 전 그때는,
알라의 생각이 틀렸다고 믿었어.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일 거로 생각했어.
긴 여행에서 돌아와, 여행자에서 생활자가 되었고,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여러 일을 했어.
살면서 때때로 알라의 말이 생각났어.
삶의 마디가 생길 때마다 그의 말이 조금은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틀리고, 그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깊어갔어.
헤어지는 날,
알라는 따뜻한 포옹과 함께 짧은 편지를 써 줬어.
아랍어 필기체로 쓴 그 편지를 읽을 수는 없었지.
답 없이 바쁘게 다가온 미래들이 편지 위로 켜켜이 쌓여갔어.
알라와 헤어지고,
열여덟 번째의 여름이 찾아왔을 때,
여러 착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알라의 편지 번역본을 마주했어.
한국에서 온 너를 만나서 참 기뻐
네가 하는 모든 일에 행운이 있기를 바랄게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은 영원히 기억될 거야
언젠가 우리 집에 또 놀러왔으면 좋겠어
모든 것을 줄게
꼭 다시 만나자
너의 친구, 알라가
모든 것을 준다니.....
헤어진 지, 18년 만에 그의 진심을 알 것 같았어.
눈꺼풀이 뜨거웠고,
알라가 보고 싶었어.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알라.
2003년 민주화 시위에서 나쁜 일이라도 당하지 않았는지.
편지를 받은 지 20년이 되는 해는 이집트에서 여름을 보냈으면.
카이로의 거리를 헤매다 그때처럼 우연히 만났으면 좋겠어.
이제는 이렇게 말해 줄 수 있는데.
친구야.
지금 너무 행복해.
네 말이 맞았어.
이 순간이 삶의 모든 거야.
고마워 알라.
바보 같은 여행자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기적에 마음을 모두 열기까지 18년이 걸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