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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야꾸마리

by 피라

비베까난다의 여행이 마침내 끝난 곳

인도인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고 싶어 하는 성지

아라비아해, 뱅갈해 인도양의 세 바다가 만나 하나가 된다는 인도의 땅끝

깐야꾸마리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인도의 철도레일이 끝나는 곳

비 내리는 깐야꾸마리 기차역

떠나가지도,

도착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한 사람


짜고 습한 공기를 이불삼아,

눅진눅진한 돌의자에 누워 몇 시간째 꼼짝 않는 사람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듯 거친 천을 얼굴까지 푹 덥고

생각하는 듯 자는 듯 모로 누운 사람

유일하게 세상 밖으로 드러낸 맨살은 발바닥

오랜 세월 굳은살 투성이 발바닥에 박힌 깨 같은 돌가루들


식물에게는 뿌리, 인간에게는 발바닥

식물이 뿌리내리려 애쓰듯,

땅에 뿌리내리려 힘쓰는 인간

현실이라는 대지와 허공중의 삶을 이어주는 발바닥


가장 낮은 존재가 우리 삶의 받침돌.

평생 책을 읽고 생각하느라 발바닥을 잊고 살았던 노교수는

긴 여행 끝에,

깐야꾸마리에서 비베까난다의 발바닥을 보았어


그때야 비로소 알았어

인도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걸

자신과 거리를 둬야 자신을 알듯

안다는 건 모르다는 걸 아는 것

자신을 타인처럼 느껴야 인간은 성장한다는 것



오랜 세월 생명의 도장들이 깊이깊이 찍힌 대지를 걷던,

비베 까난다는 말했어

모든 종교는 명랑해야 한다고


하물며 삶이야


여행에서 돌아와 꿈을 꿔

깐야꾸마리역 노숙자의 발바닥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는 꿈을

그때마다 그는 기다린 듯 껄껄껄 웃으며 벌떡 일어나 속삭이지


내 발바닥에 당신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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