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준비를 한다. 바깥 날씨가 추운데 한사코 옷을 입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말한다.
"공룡이 왜 사라졌는지 알지? 날씨가 추워져서지? 지금 밖은 추워, 이 옷 안 입으면 우리도 사라질 지 몰라."
아이는 옷을 입었다. 지난 겨울의 한 대화다.
너무 비약시켜 말한 것은 아닌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추위에 몇 번 덜덜 떤다고 죽거나, 사라지는 것은 것은 아닌데, 사실을 너무 단순화시키고, 왜곡시킨 것 같아서다.
1900년대 초 세르비아 과학자 밀루틴 밀란코비치는 다른 행성과 지구의 상대적 위치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지금 우리가 아는 빙하기 이론을 생각해냈다. 밀란코비치의 이론은 처음에는 기울어진 북반구 또는 남반구 때문에 지구를 얼음으로 뒤덮을 만큼 차가운, 맹렬한 겨울이 생긴다고 가정했다.(영화 트마로우를 떠올려도 좋겠다.) 그러나 러시아 기상학자 블라디미르 코펜은 밀란코비치의 작업을 더 깊이 파고들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범인은 추운 겨울이 아니라 서늘한 여름이었다. 작년보다 조금씩 서늘한 여름이 반복되면 빙하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빙하학자 그웬 슐츠는 이렇게 말했다. "얼음층을 유발하는 것은 눈의 양이 많아서가 아니다. 아무리 적더라도 그 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빙하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렇다.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반드시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The psychology of money, Morgan Housel)
사람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예일대학교 정치과학자 조교수인 알렌산더 카포크는 사람들의 '변화'에 대해 연구했다. 수천명의 참가자들을 칼럼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연구했다. 그는 무엇이 정말 의견을 변화시키는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카포크와 카토연구소의 공동연구진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밝혀냈지만, 그 '이유'는 찾아내지 못했다.
빙하기와 공룡 이야기를 통해 옷을 입도록 협박한 아이디어로 아이가 옷을 입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게도 타인에게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필요하고, 원하는 변하든 원치 않은 변화든 우리 모두는 계속 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계기로 인해 삶이 크게 달라진 이야기가 많다.
'자살을 생각하고, 길을 걷다가, 다리가 없이, 바퀴달린 나무 판자에 몸을 올리고 길을 건너는 사람을 보았고, 그 순간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고, 그 뒤로 내 인생은 바뀌었습니다.'와 같은 변화의 이야기들. 그런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변화에 대한 해석이다. 빙하가 어느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 것은 그 순간이 붕괴의 원인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녹고, 형태가 바뀌어, 그 작은 변화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때가 되면 와르르 무너진다. 우리는 그 붕괴의 순간만 인식한다. 그 붕괴의 순간에 하늘에 파란색 새가 날고 있었으면, 이렇게 해석한다. 파란색 새가 나니 빙하가 무너졌다고.
우리가 원하는 삶과 세상의 큰 변화는 작은 변화들이 모이고 모인 결과다. 이유는 간명하다.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엄청난 에너지가 어느 날 뚝딱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적 변화든 심리적 변화든 변화의 에너지가 폭발하려면 먼저 에너지가 축적되어야 한다. 그 에너지가 근력이든, 열정이든, 빙하를 무너뜨리는 따뜻한 온도든 마찬가지다. 삶으로 치면 일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이 아니라, 뭔가를 꾸준히 하는 일상. 꾸준히 뭔가와 상호작용을 하는 일상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지금은 변화가 느껴지지 않지만, 때가 되면 알게 된다. 모두들 보게 된다.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빙하를. 한 사람의 삶의 길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삶의 길은 진로다.
어느 날 갑자기 원하는 직업을 선택한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그 직업을 얻게 되었다고 삶이 바뀌지 않는다. 원하는 직업을 얻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꿈에도 생각지 않은 직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 차이, 그 변화를 만드는 것은 직업을 가지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일상을 살아왔는가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바로 지금이 변화를 만들어내는 바로 그 순간이다. 핵심은 나와 세상과의 상호작용이다. 나는 지금 세상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가? 그 순간들이 우리의 미래, 미래의 변화를 결정짓는다. 삶은 특정한 조건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어떤 조건이든 그 조건과 내가 어떤 상호작용을 할 것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상호작용이 조직적,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걸 일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걸 일상이라고 부른다. 일과 일상이 결합된 상태를 삶이라고 부른다.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어떤 미래에 시험 성적이 좋고 나쁨이나, 어떤 대학을 가고 어디에 취업했는가가 아니라, 오늘 아침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는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하니까. 아이에게는 그게 삶 한가운데이니까. 아이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