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by 피라


매일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의미가 없었던 고1 때, 자퇴해야겠다고 담임에게 말했다. 담임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무지개 좇는 놈이라고 했다.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은 아무리 쫓아가도 다가갈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것이라 했다. 대학이 유일한 의미라 했다. 그런 분위기가 싫어서 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었다. 대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차라리 독학으로 공부해서 1년이라도 빨리 가겠다고도 부모와 담임을 설득했지만, 결국 자퇴하지 못했다. 그 뒤로 1년을 우울하게 보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해야 하는 이가 겪는 우울함이 삶을 지배했다. 고 2가 되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술 마시며 우리들의 현실과 인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탐구했던 대화의 시간은 고등학교 시절을 견디게 했던 힘이었다. 그때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10명이었고, 고2 때 마시리라는 이름의 서클로 만들었다. 한 달 5천 원이 회비였고, 그 돈으로 술 마시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서클이었다. 그 친구들은 지금도 소중한 친구이다.


난 지금도 17살 때와 똑같다. 의미를 찾고 싶다. 이미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라고 여전히 믿는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 안정감, 가치, 보람의 원천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많은 성취를 이루고, 대단한 조건을 갖추고도 의미를 찾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매일 학교로 가고, 매일 출근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무언가를 생각하고, 무언가를 하는 일상 속에서 한 조각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는 인간의 삶은 비극적이다.


삶을 사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일을 하는 사람은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진로는 그가 삶과 일에서 느낄 수 있는 의미가 이끈다. 아무리 불확실한 진로도 자신이 생각하는 의미가 확실하다면 기어코 찾고 기어코 실현한다. 아무리 많은 지원을 받는 확실한 진로가 보장되는 길도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17살 때 생각했다. 30년 뒤쯤에는 우리 같은 학생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일단 공부를 잘하고, 일단 대학을 가고, 일단 취업을 하고, 일단 돈을 모은 뒤에 의미 같은 건 나중에 생각하라 말하는 일방적인 교육은 변할 것이라고. 예상이 크게 빗나간 것 같다. 학생과 청년들은 여전히 의미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고, 대부분의 의미는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팔려 가기 위해 철창에 갇힌 노예와 비슷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팔려나간 노예가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기 시작하고, 하는 일의 정당한 대가를 노예에게 주는 상태. 하루 8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가 주어지는 상태. 하지만, 일하는 의미를 알 수도 생각할 기회조차 없는 상태. 일의 의미 같은 것은 생각도 말라는 교육을 받은 상태. 그런 상태로 일하는 사람을 노예라고 불러야 할까? 직장인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일하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취업준비를 하는 상태. 그런 취업의 상태를 꿈꾸는 것이 학생과 청년의 유일한 삶의 의미인 상태. 만약 그런 것이 삶의 의미라면 그건 너무나 불안하고, 안타까운 의미다.


교육은 의미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의미를 알 수 없으니, 지식과 지혜를 쌓아가며 크고 작은 의미를 발견하고, 서로의 의미들을 연결 지을 줄 아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시장에 팔려가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의미없는 정보들을 누가 빨리 머리에 집어넣는지를 경쟁시키는 것은 도저히 교육이라고 부를 수 없다. 무엇보다 기업은 그렇게 교육받은 지원자들을 뽑고 싶지 않다. 그들은 일을 못 할 가능성이 훨씬 크니까. 생산성이란 곧 의미의 발견이다 .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못하는 사람에게 급여를 줄 기업은 없다.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지 못하면 스스로 살아갈 힘도 사라진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의미일까?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정보를 머리 속에 꽉꽉 집어 넣는 방법일까?


교육, 특히 진로 교육은 의미에 대한 교육이어야 한다. 자신만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를 탐구하면 그와 연관된 직업과 일을 자연스레 찾게 될 것이다.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일단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들에 담긴 의미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진로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일의 의미와 자신 삶의 의미를 연결 짓는 과정이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일의 시간을 견딘 댓가가 일상이라 여기는 삶은 위태롭다. 백화점 물건을 선택하듯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경쟁적으로 선택하면 안된다. 일단 의미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일과 삶이 지속된다. 그래야 예상치 않은 삶의 과정, 예상치 않은 일의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즐길 수 있다. 의미는 돈보다 중요하고, 돈은 의미를 쫓아간다. 돈만 좇고 의미를 놓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진정 돈을 벌고 싶으면 의미를 공부해야 한다.


의미 같은 건 일단 대학에 가서 찾으라고 윽박지르던 담임은 생물 선생님이셨다. 벌써 돌아가셨을 테다. 기나긴 인생을 회상하며 선생님은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를 느꼈을는지 궁금해진다.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의미가 없어 자퇴하겠다던 17살 학생을 마주할 때, 그때에는 선생님 자신도 삶의 의미 같은 건 없었을 거라는 걸. 만약 자신의 삶에 한 조각 의미가 있었다면 <의미>라는 단어를 그렇게 무시하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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