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by 피라



삶을 직선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목표를 이루어가는 삶. 직선적 사고는 이분법과 연관된다. 생각하는 것이 성취되면 기쁨이고, 좌절되면 슬픔이다. 기쁨 속에서도 겸손, 감사, 냉소적 태도가 있을테고, 슬픔 속에서도 만족, 자부심, 희망이 있을테지만, 이 역시 이분법적 태도의 조합일뿐이다.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리는 것, 한 단어로 말하면 선택의 문제다. 선택.




진로 문제의 시작은 인간의 진로를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에 있다. 쇼핑 아이템을 선택하듯, 각자가 생각하는 진로와 직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학교를 정하고, 전공을 정하고, 직업을 정한다. 진로를 정한다는 것은 선택이다. 선택하지 않은 이들은 불안하다. 시간은 지나는데 선택하지 못해서 불안하고, 선택대로 실현되지 않아서 좌절한다. 인형뽑기 같다.




우리 모두는 다 안다. 선택은 곧 계획으로 이어지고, 인생은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 치열한 비즈니스의 세계든, 여유로운 일상이든 세상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성공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실패해서 좌절 속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가 나름의 최선의 선택과 계획이 있었다는 걸 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더 완벽에 가까운 선택과 계획에 집착한다. 선택과 계획은 미래의 더 나은 조건을 향한다. 조건은 결과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선택과 계획이 아니라는 것을. 나름의 실패와 성공, 나름의 좌절과 극복을 경험한 사람은 안다. 삶은 선택과 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문제라는 것을. 저마다 타고난 개성에 맞는 자신만의 상호작용 모델을 만들어가는 길이 진로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직업과 조건이라는 결과에 대한 목표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정에 대한 자신만의 '상호작용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조건에 상관없이, 계획과 선택에 상관없이 신나게 작동하는 상호작용. 그걸 건강한 삶이라고 부른다.




자신만의 상호작용 모델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직선적, 이분법적 태도는 줄어들 것이다. 바라던 대로 진로가 펼쳐지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좌절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예상치 않은 다양한 리스크를 통해 새로운 진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진로 문제는 특정 시점에 끝나지 않는다. 평생 번듯한 직장을 다니다 은퇴하는 삶도 진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진로 문제의 본질은 60대 이후부터 발견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조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지 알 수 없다. 미래는 언제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태어남과 죽음으로 볼 때, 시간의 흐름으로 볼 때, 삶은 직선적이다. 삶의 형식은 직선적이고, 선택적이지만, 삶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삶의 내용이란 무언가와 끊임없이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다. 세상과, 타인과, 자신과 상호작용하면서 잘 주고받으면 좋은 삶이 된다. 그런 사람의 진로는 저절로 잘 만들어진다. 우리의 진로를 생각할 때,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계획할 지의 문제보다,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을지의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걸 가르쳐주는 것이 교육이다. 무엇을 아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 교육이다. 초등학생이든, 노인이든 스스로 알아가야 한다.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진로를 만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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