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한 지 4년째다.
사실 일과의 인연은 20년이 훨씬 넘었다.
첫 직장에서 일은 <일>에 관한 것이었다. 지원자를 뽑는다는 것은 일을 할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었으니, 일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 채용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채용과 인사 관리를 하며 지원자들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현장을 뛰어 다니며 배우곤 했다. 2002년에 부사장 직속 Task에서 전사 직무 분석을 10개월 가량 했다. 일하던 기업의 모든 일을 의미 단위, 행동 단위, 시간 단위로 모조리 분해하고, 분석하고, 재정의하는 아무도 해보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퇴직 후 취준생들의 취업을 도우며 줄기차게 말한 건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 직무 역량이었다. 오랜 세월 <직무 역량>이란 말을 외쳐왔으나, 정작 나 자신은 얼마나 <일>에 대해 알고 있는지 정직한 질문을 해 보았다. '나 역시 잘 모른다'라는 진실을 인정한 것은 2019년이었다. 일 잘하는 방법이 아니라, 일의 본질을 알고 싶었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그때부터 일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일을 주제로 다룬 책들 대부분은 읽은 것 같다.
모두가 삶을 살지만 삶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며 배우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일을 하지만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며 배우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내일은, 내년은, 3년 뒤에는, 10년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똑같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공룡 놀이를 하는 것도 일이고, AI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도 일이고, 탑차를 몰며 물건을 배송하는 것, 쇼핑하는 것 등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관한 것은 모두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놀이와 일의 경계, 일과 삶의 경계 모호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한반도 휴전선 같은 경계를 두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경계를 두지 않기도 한다. 일은 경계와 속성에 따라 수많은 정의가 나올 수 있는 개념이다.
일의 금전적 대가를 지속적으로 받으면 직업이라 부르고, 일의 금전적 대가를 당장 생각지 않으면 자기 개발, 투자, 봉사 등이라 부르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보상을 전제로 한 직업이 의미 있는 일이라 여기지만, 어떤 이는 목적과 이해관계가 전제된 직업적 일을 하찮게 여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직업적 일이 일의 전부라 생각한다. 어떤 이는 직업적 일이 없어 절망하고 어떤 이들은 직업적 일을 해야 해서 절망한다. 어떤 이는 일 때문에 행복해하고, 어떤 이는 일이 없어 행복해 한다. 어떤 경우도 그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일과 삶은 참 닮았다.
일에 대한 본질을 알아야 할 것 같다. 어린 학생이든, 취업준비생이든, 진로교육을 하는 교사든,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이든, 창업, 경영, 자영업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든, 은퇴 후 새로 할 일을 찾는 이들이든 모두에게 필요할 것 같다.
"자네는 이상을 쫓는가? 현실을 쫓는가?"
결혼하겠다고 첫 인사를 드리는 자리에서 장인 어른이 던진 질문이다. 속이 뜨끔했다. 난 이상에 치우친 사람이다. 이상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고, 현실이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이상이라고 대답하면 이상한 인간으로 비춰질 것 같고, 현실이라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둘을 연결 짓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좀 더 자세한 대답을 할 수 있다.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가장 이상적인 것을 만들기,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가장 현실적인 것 만들기, 그게 삶의 재미"이라고.
지난 주말 아이와 함께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둘이서 자가 격리하는 동안 그 동안의 <일>에 대한 생각을 담아 연구소 홈페이지를 리뉴얼했다. 아이는 넷플릭스의 <신기한 스쿨버스2>를 좋아한다. 몸이 힘들 때, 일할 때, 아이가 원하는 스쿨버스를 원 없이 보게 했다.
아이가 스쿨버스 이야기 속에서 실패의 중요함을 배우는 동안 나는 워드프레스를 배워가며 홈페이지 리뉴얼 작업을 했다. 어제 아침에는 과욕을 부려, 전문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도메인 등을 임의로 바꾸다가 워드프레스 계정이 날아가버린 적도 있었다. 다행히 기적처럼 복구가 되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이트다. 수정보완중이다.
분홍색으로 정한 이유는, 그 동안 읽은 일에 관한 책들 중, 내가 생각하는 일과 가장 비슷한 생각이 담긴 <삶으로서의 일>의 책 표지 색깔이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일을 하며 <모두와 함께 모두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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