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구소에서 점심을 먹으러 갈 때마다 한 노인과 계속 마주친다. 몸무게는 도저히 40킬로그램도 나가지 않을 것 같고 곧 쓰러질 듯 서 있다. 허리는 90도로 숙인 채,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한 걸음 한걸음 걷고 계시다. 가던 길을 멈추고 눈 여겨 봐야 아주 천천히 걷고 있다는 알아차린다. 휙휙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보도 한 가운데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90도로 굽힌 채 서 있는 모습이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죽을 각오로 바깥에 나와 필사적으로 걷는 연습을 하는 노인이다. 몇 살쯤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알 수 없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상체가 접혔고, 푹 숙인 얼굴은 언제나 땅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노인을 볼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오늘은 노인과 스치고, 식당으로 가는 길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영도라는 섬에 이사를 간 해는 1997년이었고, 퇴직을 한 해가 2003년이었다. 퇴직 후 이듬해부터 한 60대 후반~70대 초로 보이는 한 사람과 자주 마주쳤다. 그 사람은 오늘 만난 노인처럼 힘겹게 걷고 있었다. 얼마나 힘겹게 걷는지 1미터를 이동하는데 15분은 족히 걸렸다. 그는 걷는다기보다는 걷기 위해 애쓰는 상태였다. 누가 봐도 뇌출혈 후유증 같았다. 지팡이를 집고 재활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왔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신발을 이리저리 비틀어야 1,2센티 정도 겨우 몸을 전진했다. 지나는 이가 보면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세상에 드러내며 절규하는 것 같았다.
외출할 때마다 그 사람과 자주 만났다. 그 사람은 동네 풍경처럼 언제나 길 어딘가에 서서 필사적으로 걷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지나며 바라보는 그는 언제나 가만히 선 채 망연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뭔가를 계획하는 듯 정지화면이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렀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났다. 흐르는 세월 동안 그 남자와 간혹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5년쯤 지나니 제법 이동 속도가 빨라져 3미터를 이동하는데 1분 정도 걸리는 듯 했다. 10년쯤 지났을 때, 그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다. 더 이상 아픈 사람 같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걷는 모습이 엉성하고 속도도 느렸지만, 그냥 천천히 등산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오늘 문득 깨달았다. 그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었다는 것을.
그가 처음 걷기 위해 죽을 각오로 길에 섰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몇 달을 노력하고, 몇 년을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걸 알았을 때, 그의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자리잡았는지 궁금하다.
오늘 만난 그 노인, 요즘 자주 만나는 그 노인도 오래전 그 사람처럼 건강을 회복하고 성큼 성큼 걷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단지 걷는 것만이 일생일대의 유일한 소원이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많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나의 삶도 타인의 삶도 무심코 스치기만 하면 삶에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