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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Apr 08. 2022

이오덕과 윌리엄 진서



이오덕, 이오덕선생님을 처음 뵌 건 15년 전이다. 직접 뵙진 못했다. 책을 통해서 만났다.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시작한 글쓰기 항해는 이오덕선생님의 <우리 말 살려쓰기>에서 닻을 내렸다. 나는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니, 한국말로 글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책의 주장은 모두 맞는 말이었지만, 현실에서 통용되는 글과는 거리 있는 내용도 있었다. <옳지만 조금 비현실적이야>라는 생각의 틈새는 지난 15년 동안 점점 벌어졌다. <우리 말 살려쓰기>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읽은 책, 책장 그 자리에 항상 놓인 책, 그냥 <안다>고만 여기는 책이었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 행동에 반영되지 않는 앎은 앎이 아니다. 특히 글쓰기에서는 머리 속만의 앎은 설 자리가 없다. 내 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은 앎은 그냥 무지일뿐이다. 이 간극을 줄이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다. 바로 글쓰는 행위다.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킨 뒤, 졸업 후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듯 지난 주말에 이오덕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옛날에 무심코 지나갔던 말씀이 귀에 꽂힌다. 미국에서 30년 동안 100만명 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의 기본을 가르쳤다는 윌리엄 진서의 생각과 시골 초등학교에서 평생 동안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통해 삶을 가르쳤던 이오덕선생님의 생각이 같은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존경하는 두 명의 선생님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진실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진실이다. 진실한 글은 진실한 삶에서 나온다. 좋은 글은 진실의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글쓰는 사람은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한다.




타인의 진실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글을 쓸 때는 진실이란 단어를 너무 가볍게 혹은 너무 무겁게 여기지 말아야겠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 자신과 세상을 부정하는 시간들이 너무 어둡고 너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실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상호 작용하는 역동적인 상태라는 것,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추구하는 상태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진실은 무겁고, 심각하고, 따분한 주제가 아니다. 진실은 재미있고, 가슴 뛰고, 놀라운 주제다. 진실은 발견이고 배움이고 성장이다. 모든 의미 있는 앎이란 진실이 바탕이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것처럼 삶에서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교실이 생기를 잃은 이유는 진실은 내쫓기고 기능만 남은 탓 아닐까? 교사와 학생 스스로 삶과 세상의 진실을 탐구하며 서로 진실하게 생각을 주고받는다면 교실은 가슴 뛰는 일이 벌어지는 놀라운 공간이 될 것 같다. 교실뿐 아니라, 치열한 비즈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 글을 쓰는 것,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며 일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배운다는 것은 진실에 대한 추구다. 저마다의 진실이 함께 모여 체계를 이루고, 그 구성체의 공통된 기초를 진리라고 부르는 것 아닐까? 




진실과 만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 없이는 글을 한 줄도 쓸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에 나를 드러내고 싶은 오만함과 개미 한 마리의 시선도 부담스러워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은 부끄러움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일이다. 자기 중심성이 드러나도 안 되고, 자신중심성을 잃어도 안 되는 애매한 상태. 글쓰는 사람은 그런 애매모호한 상태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지속적 균형을 잡아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외부 변수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과 생각 속에 뒤섞인 자기 중심성을 찾아내 걸러내고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를 표현하는 것은 용기고, 나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실이다. 




진실이 행동의 영역으로 옮겨가면 정성이라는 단어가 된다. 글쓰기에서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대단한(?) 결과물을 위해 고민만 하다 세월을 보내는 것이라는 깨달았다. 나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스윙 연습을 하듯 뭐라도 일단 써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혀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정성이 담기지 않은 글이 되었다. 그런 부끄러운 글도 일단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과 정성이 뒤따르지 않는 용기는 글쓰는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글을 쓰지만, 글쓰는 행위 자체에만 몰두하다 글 속에 자신이 갇히는 상태다. 일단 글을 잘 쓰기 위해 진정으로 원하는 글쓰기를 일단 미루다보면 글은 진성성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내가 쓴 글이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는 글이 된다. 글쓰기에서의 용기란 어떻게든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짓는 행동이고, 글쓰기에서의 진실이란 완성된 글이 나의 모든 것이라 여길만큼의 정성어린 마음을 쏟는 일이다. 




글은 진실의 항구에서 출발해서 정성이라는 바다를 건너 다시 진실이라는 항구에 도착하는 과정이다. 삶도 일도 역시 그러하다. 이오덕선생님의 책을 다시 읽고 결심했다. <피트니스처럼 매일 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담아 정성껏 쓰자.> 유전적으로 타고난 집요함에 집착하는 기질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적절히 활용해야겠다. 그것이 나답게 사는 일이니. 글을 덤성덤성 가볍게 쓰는 스타일이라면 좀 더 진지하게 쓰는 법을 연습해야 할 것이고, 시작부터 너무 무거워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면 스낵을 먹듯 가볍게 쓰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 둘의 균형을 찾아가며 적절한 정성이 담긴 일정한 분량의 글을 지속적으로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렵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글이라는 비장함과 새로 산 노트에 첫 일기를 적을 때의 설렘과의 균형을 맞춘다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글쓴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글쓰기가 재미있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시시하지 않기 때문에 평생 해볼만한 일이다. 하면 할수록 힘들고, 힘든만큼 재미도 함께 느낄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내가 지워진 글을 쓰려고 10년 넘게 노력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진실한 모습의 나와 대면하는 용기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고,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 이런 마음을 담아 홈페이지에 올렸던 지난 글들을 모두 지웠고, 글 하나를 다시 올렸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진실 어린 정성을 담으려는 마음과, 그런 바람이 실현되지 않아도 과감히 나를 드러내는 용기 사이의 균형. 그것이 내가 아는 글쓰기다. 삶도 일도 비슷할 것 같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삶도 그렇다. 오늘 하루가 지금까지의 지겨운 나날들의 반복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는 삶이 힘들다.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라 여긴다. 삶을 바꿀 수 없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글쓰기는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난 생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꾸는 과정이다. 그래야 글을 지속해서 쓸 수 있다. 글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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