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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Jan 27. 2022

지렁이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요즘 학생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 누구든 수만장의 자소서를 읽고, 면접을 수천명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요즘 학생들은 진짜 아무 생각이 없구나..."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대부분 뻔한 가식적 내용들이고 자신의 진짜 생각과 의견을 말하는 경우는 무척 드무니까.




인간이 인간을 향해 아무 생각 없다고 말하는 건 무지의 소산이라는 걸 최근 깨달았다. 어떤 인간도 자신만의 생각이 없는 경우는 없다. 생각이란 공기와 같다.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게 상대가 자신과 의견이 다를 때, '아무 생각 없군'이라는 태도를 취한다. 사실은 상대가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를 때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로 취하는 것이다.




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심각한 중환자도 자신만의 생각을 흐릿하게라도 가지기 위해 죽어가는 순간까지 의식을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누구나 치열하게 산다. 그런 인간 존재를 향해 너는 아무 생각이 없군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다.




문제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생각을 표현하려면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스스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정리한 다음, 언어의 형태로 만들어내어야 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정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머리 밖으로 드러낸 나의 생각에 대한 타인들 반응과의 상호작용이다. 대부분은 방어, 공격, 왜곡, 회피, 무조건적 수용 등의 쉽고 편한 태도를 취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서로의 생각을 지구력있게 나누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의사소통이라 말한다. 공부(진짜 공부), 일, 삶의 과정이기도 하다. 산다는 건 나와 대상과의 상호작용 과정이다. 인간은 발달된 기호와 언어를 통해 세상과 상호작용한다는 점만 다를뿐, 모든 생명의 본질은 같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날 힘겹게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는 한 마리의 지렁이나 자신의 진로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나 삶에 대한 갈망은 똑같지 않을까?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삶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가진다는 점, 상호작용을 통해 집단의 문화로 축적한다는 정도 아닐까? 앞으로 누군가에게 "너는 아무 생각이 없어"라는 말은 물론,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지렁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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