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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Apr 20. 2022

토굴


문득 욕망과 탐욕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비슷한 뜻이다. 욕망이 지나치면 탐욕이라고 부른단다. 적당하다거나, 모자란다거나, 지나친 것의 기준을 잡기란 어렵다. 그때그때 다르고, 애매모호하다. 세상이 복잡하고 삶이 힘든 것은 욕망과 탐욕을 구분하는 적당함의 기준을 잡기 어려운 탓 같다.


욕망이란 자기 중심성의 다른 이름 같다. 살아가면서, 그때 그때마다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어야 하는가? 얼마나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하는가를 지혜롭게 판단하기란 어렵다. 오랜만에 친구와 대화하다 '맞장구를 칠까? 화제를 돌릴까?'를 생각하는 일상의 일이나, 야심찬 프로젝트를 가동해 세상을 놀래킬 제품을 내어 놓는 기업의 일이나 비슷한 것 같다. 모두 자기 중심적 태도를 얼마나 취할까의 문제로 보인다.


기어코 서울대를 가야 하고, 의사, 검사, 공무원이 되려는 마음이나, 세상을 등지고 전기도 없는 산골에서 월든의 소로처럼 살려는 마음도 자기 중심성에서 비롯된다. 완전히 초탈한 경지도 있을테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기심도 이타심도 자기 중심성의 다른 측면일뿐이다.


붓다처럼 완전히 깨달은 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면 자기 중심성을 부정해서도, 그 속에 매몰되어서도 안 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망하는 나와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자기 중심성에 매몰되면 탐욕과 문제 생기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 건강한 욕망과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타인과도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듯, 자신과도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한 것 같다. 나와 거리 두기는 특히 글쓰기에서 필요한 태도 같다. 할 말이 있어 글을 쓴다는 것과 읽을만한 글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2003년에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다. 검색해보니 블로그 서비스가 시작된 해다. 마음에 맞는 이웃들과 글로 소통하는 일이 즐거웠다. 즐겨 찾는 이웃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 정성껏 글을 썼다. 2008년경에 블로그를 닫았다. 닫아야 했던 직접적 이유도 있었고, 사람들과의 소통 없이 혼자서 좋은 글을 쓸 자신도 생겼다. 돌아보니 그때가 내 인생의 큰 실수였다. 자기 중심성이 빚어낸 실수.


작년 여름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웹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미 써 놓은 글들을 붙여 넣기도 하며, 글을 때때로 올렸다. 오늘 확인해 보니, 브런치에 99개의 글이 발행되었다. 대부분 설사 같은 글이다. 100개가 채워지면 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할까 한다. 네이버 블로그도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지나친 자기 중심성으로 인해 세상에 대해 좀 안다고 착각하고, 세상을 등지고 혼자 토굴에 들어가는 선택. 토굴에서 10년 만에 혼자서 아이폰 같은 물건을 만들어 세상에 짠~하고 보여주려는 허황된 꿈을 다시는 꾸지 않을 거다.


2003년 블로그를 시작하던 시절, 누군가의 짧은 댓글이 내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던 하루하루가 기억난다. 내가 무언가를 얘기하고, 누군가가 그걸 읽었다는 사실. 그걸로 충분하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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