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교육에 관여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린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잊혀진 이름들이 줄줄이 떠오른다. 이반 일리치, 스콧 니어링, 알도 레오포드, 유영모, 간디, 장일순, 한스 요나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레이첼 카슨, 에머슨과 소로, 피터 싱어, 비베 까난다, 붓다와 인디언, 미야자와 겐지, 제레미 리프킨, 장자, 피터 크로포트킨, 다윈... 환경 교육을 고민할 때 나를 이끌었던 스승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을 꼽으라면 이반 일리치다. 환경 문제와 연관된 생태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반 일리치와 만난다. 경제 성장, 학교, 핵발전 등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소신있게 주장해 여러 논란을 일으켰고, 스스로 사제직을 버린 카톨릭 신부다. 피터 싱어와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수세식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섞어 내보내는 것이 내가 했던 환경 교육의 컨셉이었다.
그때는 개인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다. 레디컬 이콜로지라는 책을 보면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생각과 태도를 잘 정리해 놓았는데, 그 책을 보면서 역시 나는 레디컬한 입장이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환경 교육을 할 때는 나의 생각을 진솔하게 말할 수 없었다. 교육은 변화가 목적이고, 강의를 듣는 사람의 공감과 변화를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야 한다. 간단한 원리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나의 생각과 상대의 생각을 연결하는 다리는 무지, 우연, 진실, 편향으로 이루어진 예측 불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환경 교육에 빠져 있던 10년 정도는 나 스스로의 작은 실천이 환경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 믿었다. 한 명 한 명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지구 환경 문제의 시작이니, 에너지를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쓰레기를 최대한 적게 배출하는 것이 실천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채식은 기본이고, 샤워는 가능한한 차가운 물로 했다. 샤워할 때는 세수 대야에 빨래를 넣고 대야 위에 서서 샤워를 했다. 그러면 샤워 물이 몸을 타고 흘려 내려 대야 안으로 들어 가는데, 두 발로 빨래감을 밟으며 샤워를 했다. <샤워+세탁+물 아끼기>의 세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는 비법이었다. 설거지는 항상 찬물로 했고, 쓰레기는 분리 배출이 아니라,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혼자 살 때 배출 되는 쓰레기는 많아야 한 달에 5리터 한 봉지 정도였다.
환경 문제의 원인은 경제 문제고, 경제는 쓰고 버리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니, 나 스스로 성장 중심의 경제 시스템에서 탈출해서 자발적 가난과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야 해결될 문제라 생각했다. 그런 개인들이 많아지면 환경 문제는 해결되고 세상은 좋아질 거라 믿었다. 그 정도는 실천해야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환경 문제 해결은 개인의 작은 실천이 아니라, 기업의 조직적 변화가 결정적 열쇠라고 본다. 한 때 개개인의 생활 속 작은 환경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던 레디컬한 삶을 살아본 경험을 돌아보면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쓰나미보다 거대한,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데, 해안가에서 몇몇 사람들이 양동이, 바가지, 숟가락을 들고 "여러분! 우리의 힘을 모으면 저 거대한 쓰나미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말고 각자의 도구를 이용해 바닷물을 퍼 냅시다.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이다.
생각에 따라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환경 문제는 플라스틱에 붙은 라벨을 힘겹게 분리하고, 위험한 도심을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배달 음식 용기를 정성껏 씻는 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기업이 라벨이 없는 제품을 만들고, 재사용 가능한 배달 용기를 만들어, 이를 수거해 세척하고 유통시키는 시스템을 기업과 정부가 만들고(기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기고, 정부의 입장은 그 좋아하는 일자리 창출도 되니..), 기업과 지자체가 도시 재생의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도보와 자전거만으로도 근사한 생활이 가능한 도시를 만들어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을 쉽게 하지 않는다(무라벨은 제품은 이미 나오고 있고, 코펜하겐 같은 곳은 이미 자전거 도시가 되었고, 일회용기의 문제는 모두 공감하니 결정만 하면 될 문제지만, 모두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한다.) 환경 교육을 논의하기 위해 참여한 행사 등에서 발제자나 토론자로 참여했을 때 나의 일관된 주장은 <환경 교육의 목적은 환경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환경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환경 교육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이라 주장했다. 환경 교육의 메시지와 내용들이 학교 교육 안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교사들이 평소 때 교육을 통해 환경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환경 교육의 모습이었다. 환경의 문제는 세상과 삶의 문제고 시대 정신이다. 한 시대에 필요한 생각과 태도를 학교에서 교육하고 사회의 각 영역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방식에서 벗어나, 과거의 나 같은 외부 환경 교육 강사가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따로 해야 하는 모습이 참 기형적으로 보였다. 나 또한 학교에서 환경 교육을 한 외부 강사였지만, 나 같은 환경 교육 강사가 사라지는 것이 환경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라 믿었다. 내가 생각한 바람직한 환경 교육은 <환경 교육이라 불리는 환경 교육이 아니라 교육이라 불리는 환경 교육>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 강사들이 연례행사처럼 하는 교육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사들이 평소에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교에서는 공감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환경 교육 단체에서는 이런 주장을 싫어했다. 아직도 이상적 이야기이긴 하다.
최근 ESG가 트랜드다. 오래 고민했다가 묵혀둔 고민이 해결되는 것 같다. 환경 문제는 기업의 문제고, 기업의 변화를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행동과 요구처럼 즉각적인 것은 없다. 기업은 소비자로 인해 존재하고, 우리 모두는 소비자이자 투자자다. 모두가 고객이자 잠재적 주주다. ESG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개개인의 실천(바닷물을 숟가락으로 퍼올리는 행동)을 기업(환경 문제 해결의 큰 주체)의 변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연결고리다. 개개인의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은 분리 수거가 아니라,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당당하고 강한 목소리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내가 보는 ESG는 모두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고, 모두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삶의 문제는 세상의 문제고, 이는 곧 기업의 문제다. 환경 철학의 핵심은 생태 철학이고, 생태 철학의 핵심은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에서 존중의 개념이 나온다. 기업의 입장에서 본 존중의 대상을 자연, 사회, 이해 관계자의 세 가지로 본 것이 ESG라고 해석한다.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사회를 함부로 여기지 않고, 기업과의 이해관계자(구성원, 주주 등)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태도가 기업 생존에 필수 조건이라고 본다. 이 세 가지 태도를 갖추어야 기업의 지속 가능함이 나온다. 앞으로의 환경 교육은 소비자로서, 투자자로서 개개인이 어떻게 하면 <기업이 실질적 ESG를 실천하도록 압박>할 것인가를 교육하는 것으로 포커싱해도 좋을 것 같다. 기업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일은 많이 걷고, 대중 교통 이용하고, 분리 배출, 채식, 물 아껴쓰기, 전기 아끼기, 현수막으로 만든 가방 사기 등과 같은 간접적 실천 보다는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브런치 글은 스윙 연습하듯 최대한 빨리 해치우는데, 환경 교육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4시간 가까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를 반복했다. 환경 교육,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검색해 보니, 예전의 환경 교육 흔적들이 간간히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썼구나. 그때의 나로부터 얼마나 나아졌는지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