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by 피라


학창 시절 난 수학을 못했다. 못했다기보다는 재미가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은 탓이다. 대신 국어와 영어를 잘했다. 형제들도 나와 비슷했다. 본고사 시절 큰 형은 대성학원에서 재수를 했는데, 영어는 전국 0.1% 훨씬 넘었으나 수학은 빵점을 맞기도 했다. 작은 형도 재수했는데, 서울대에 입학한 수학 천재였던 친한 친구가 책임 지고 수학을 가르쳐 준다고 장담했는데, 몇 개월 만에 "너 같은 인간은 처음 본다"며 수학 가르치기를 포기했었다. 수학 머리가 없었지만, 형들은 서울 상위권 대학을 갔다. 큰 형과 나는 무려 12살, 작은 형과는 7살 차이다. 어릴 적부터 수학 못하는 집안이라는 걸 안 나는 중학교 때부터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국어, 영어는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도 좋은 성적이 나왔고, 암기 과목은 한 번 읽으면 시험 칠 때 95%이상 맞출 수 있는 기억력을 타고났으니 수학이 문제였다. 고 3이 되자, 1년 내내 수학 공부만 했다. 난 완전히 이해를 못하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이상한 뇌구조를 가졌었기 때문에, 수학을 <이해>하려고 무지 노력했다. 어떤 선생님도 진짜 수학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결국 수학 문제는 패턴이니, 모든 패턴을 몽땅 외우기로 결심했다. 고 3 일년 동안 모든 수학 문제를 몽땅 외우기로 했다. 외우는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문제를 한 번 풀 때마다 횟수를 표시했고, 모든 문제 옆에는 '正'자를 표시했다. 한 번이라도 본 문제는 거의 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1990년, 1991년은 새로운 유형의 어려운 수학 문제들이 출제된 해였다. 수학 시험 문제를 살펴보니 모두 난생 처음 본 문제들이었다.


형들처럼 난 수학 때문에 재수를 했다. 학력 고사 수학 성적 55점 만점에 난 10점을 받았다. 대학에 떨어지고 난 뒤, 작은 형에게 수학 때문에 괴롭다고 말하니, 작은 형은 웃으면서 자기는 8점 맞고 대학을 갔다고 했다. 안되는 것이 있으면 잘 되는 것에 집중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듯.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재수 일 년 동안 수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 수학 공부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니 재수 시절은 즐거웠다. 재수 시절 수학 공부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는 걸로 대신했고, 그해 대입 수학 시험은 편안한 마음으로 찍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28점이라는 놀라운 수학 점수가 나왔다. 심지어 주관식 답도 찍기로 맞추었다. 삼수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학창 시절 수학 머리는 없었지만 이해력과 암기력은 괜찮았던 것 같다. 이해력은 함정이 있다. 이해를 하면 자기 것이 되지만, 이해를 하지 못하면 자기 것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 이해를 하든지, 누군가 이해를 시켜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관심해지거나 겉돌게 된다. 그리고 암기력, 그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암기력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믿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기억력을 믿지 못하니 메모를 하기 시작했는데, 메모를 어디에 했는지를 잊어버리고, 메모한 사실 자체를 잊어 버리는 상태다. 뇌과학 책을 몇 권 보니 기억력에 대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기억력은 단순한 노화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소성(일종의 재생과 복원)에 대한 문제인데, 기억력은 세 가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다. 그건 <수면, 영양 공급, 운동>이란다. 어릴 적부터 먹는 건 별 관심이 없었으니 영양 공급은 잘 모르겠고, 수면과 운동은 나의 기억력 저하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고 3때도 7시간은 꼭 잤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잠자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몸을 덜 움직이고, 운동도 훨씬 덜 한다.


혹시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걱정스런 이가 있다면, 잠을 충분히 못자는 것은 아닌지, 근육을 예전보다 덜 쓰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올해는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고. 그렇게 살면 설사 기억력이 좋아지지 않아도, 좋은 삶이라 불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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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해력에 관한 것이다. 이해력은 일할 때 중요한 역량이다. 상황 판단력, 분석력, 의사표현, 문제 해결 과정에 꼭 필요한 것이 이해력이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텍스트, 언어 등의 여러 방식의 의사소통을 한다. 일은 의사소통의 과정이다. 의사 소통은 원할하게 이루어지고, 의사 소통을 통해서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즉 일의 성과를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 개개인의 이해력은 필수다.


일할때의 이해력이란 편향과 많은 연관이 있다. 의사를 표현하고, 문제 해결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안을 분석하고 자신을 일을 한 걸음씩 진행하는 과정, 그 순간순간마다 요구되는 것이 이해력이다. 이 중요한 이해의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편향이다.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배치되거나, 자신의 신념, 취향, 가치, 감정과 대립되거나, 자신의 이익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편향이라는 경광등에 불이 켜진다. 편향의 경광등에 불이 켜지면 일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뭔가를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건 자신이 그 뭔가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다. 뭔가에 대해 이해하려면 자신이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공부의 세계에서는 단순히 기억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로 판가름 나지만, 일의 세계는 단순히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 가치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일한다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뜻이고, 사회적 가치는 개인의 가치와 다를 수 있다. 개인의 가치를 버리고 무조건 사회적 가치를 쫓아도 안되고, 개인의 가치를 쫓고 무조건 사회적 가치를 버려도 안 된다. 일에서의 의미있는 성과란 개인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생기는 자연스런 결과다. 일은 주관성과 객관성을 해체해서 재구성하는 일이다. 어떤 목적으로 재구성하는가? 조직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가치라는 각각 떨어져 있는 세 영역의 가치를 꿰뚫을 하나의 가치를 목표로 잡고, 세 영역의 가치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과정을 비즈니스라고 부른다. 비즈니스의 단위 행위들을 일이라고 부른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의 과정에서 접하는 모든 정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보들을 통해 목표로 삼은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개인의 주관도 함께 해체되어야 한다. 일의 과정을 통해 업무 수행자의 주관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을 일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이해력이 높아지는 과정이다.


주관이 강한 사람은 조직적 일을 아예 못하기도 하고, 한 때 반짝 잘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가능하지는 않다. 일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며 한 분야에 대해 탁월한 성취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거리를 둘 줄 아는 태도는 지녔다는 점이다. 공부에서 말하는 이해력은 단순 암기 혹은 머리 속의 앎과 새로운 정보를 연결해 재구성하는 능력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이해력은 자신의 앎을 의심하고 해체하며 일과 나의 적정한 거리를 둘 줄 아는 능력이다. 그래야 일의 과정에서 접하는 정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아주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공부에서 요구되는 이해력은 정보를 통해 자신을 구축하는 과정이지만, 일에서 요구되는 이해력은 정보를 통해 자신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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