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

by 피라


지난 달 부산교육연수원에서 연락이 왔다. 몇 년 전 교육청에서 내가 만든 12차시 교육 프로그램을 주제로 교원 연수를 해 달라고 했다. 오랜 고민과 대안을 담아 학생들의 진로, 취업, 삶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힘을 길러주는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진로 역량, 취업 역량이란 한 사람의 전인적 특성에 관한 문제라 교육의 본질에 관한 문제라는 것, 짧은 시간 동안 학생들이 확 바뀌기 힘드니 수업 시간 연습을 통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배우고, 그 이후 학교와 가정 등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스스로 적용해 보며 의사소통 능력과 문제해결 역량을 자연스럽게 기르는 방법을 체득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피트니스로 치면 어떻게 근육을 키우는지 알기 위해 12시간 동안 직접 운동해보는 시간이다.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인터뷰다. 인터뷰의 개념부터 다시 정의했다.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을 정리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고, 표현된 생각에 대한 상대의 피드백을 듣고, 그 피드백을 다시 자신의 생각에 반영해서 다시 표현하는 순환의 반복 과정을 인터뷰라 정의했다. Interview는 사이(inter)를 본다(view)는 뜻이다. 진실은 내게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과 나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말처럼, 나와 타인, 나와 세상 사이 어딘가에 있을 진실을 찾아 의사소통하는 과정이 인터뷰다. 내가 생각하는 인터뷰란 일상의 대화, 채팅, 댓글, 회의, 업무 의사 소통 등 인간이 뭔가와 상호작용하며 생각하는 행위다. 인터뷰는 삶의 과정이고, 일의 과정이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학생 스스로 자기들의 생각과 주고받는 이런 방식의 수업에 대해 교사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너무 좋다. 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을 주고받는 수업은 힘들 것 같다!"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고, 듣고 다시 말하는 토의 토론을 할 역량이 안된다는 말이었다. 경험에서 나온 선생님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만약 선생님들의 말이 맞다면 학생들이 생각을 주고받는 인터뷰의 세계에 빠져들도록 프로그램을 더 재미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주고받는 방식의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그건 오랜 세월 입사 지원자,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을 만나며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모두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할 것 같은 말을 해야 자신의 삶이 개선된다고 기계적으로 믿었다. 그래야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고, 면접을 잘 볼 수 있고, 일도 잘할 수 있다 믿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처럼 쓰고, ARS처럼 말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그 방법을 돈 주고 배우고, 삶을 바쳐 연습한다. 그래야 원하는 곳에 취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지원자는 합격하기도 어렵고, 취업해도 일을 잘 할 수 없다. 일상의 삶을 살든, 기업에서 일을 하든 의미와 성과를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 먼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진정성, 진실, 마음을 담은 정성과 같은 말이다. 채용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가려내는 지원자의 공통된 특성은 가식성이다.


자신의 생각, 글, 말, 행동에 진심을 담아야지, 그걸 통해 깨지고 배우든지 인정받고 자부심을 느끼든지 할 수 있다. 삶이든 일이든 같은 과정을 겪는다. 진정성이 없으면 그 상태로 머물 뿐 변화가 없다. 진실되고 솔직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담아 말하고, 상대의 피드백이 어떻든 객관적으로 받아들여 다시 자신의 생각을 재구성하는 능력은 '그렇게 해야지'라는 생각만으로 갖춰지지 않는다. 연습을 해야 한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모두가 그렇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런 인터뷰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의토론수업 앞에서는 학생들이 경직된다. 학생들의 자연스런 욕구, 자연스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부터 연습시켜야 시사토론, 학술적 토론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진정성의 바탕은 학생들의 평소의 자연스런 생각과 감정이다.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호모 사피엔스의 공통 관심사인 <쇼핑>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쇼핑을 진로역량, 취업역량과 연결시켜 학생들 스스로 의사소통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가는 연습을 하게 만들었다.


몇 달 동안의 특강, 인터뷰, 상담 등의 학교 현장 모니터링을 토대로 프로그램의 내용을 다듬었고, 교사, 전문 강사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만들었다. 학생들의 반응이 어떨 지 무척 궁금했다. 반응은 놀라웠다. 설문지는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이뤄졌는데, 객관식은 90%가 매우 만족(5점), 7%가 만족(4점), 나머지는 보통 보통(3점)이었다. 객관식은 크게 나쁘지 않으면 무조건 좋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감동받은 것은 주관식 설문이었다. 학교, 학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30%~50%가 주관식 설문에 답했는데, 모두가 좋았다는 의견이었다. 짧게 쓴 학생도 있고, 마음을 담아 매우 길게 쓴 학생들도 있었다. 공통적인 내용은 '인터뷰(말을 주고받는 과정)가 재미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수업을 더 많이 하고 싶었다'였다.


수업 시간에 허구헌날 엎드려 자고, 아무 생각 없이 자괴감과 무기력을 학습하는 특성화고의 문제있는 아이들이라 토의토론 수업은 말도 안된다고 했던 선생님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다. 물론 엎드려 자는 학생들, 소극적 참여를 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학교와 학급에 따라 강사들이 힘들게 수업을 진행한 적도 있었다. 모니터링을 위해 내가 수업을 직접 진행한 적도 있는데, 어떤 때는 너무 힘들었고, 어떤 때는 너무 즐겁고 감동적이었다. 학생들의 피드백에 감동을 받은 건 가능성 때문이었다. 수업의 방식이 바뀌면 뭔가 되겠다는 가능성 말이다. 교육연수원에서 연수를 해 달라고 한 이유는 대단한 성과, 대단한 프로그램이어서가 아니라, 나와 학생, 교사들이 발견한 그 <가능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은 변화의 문제고, 변화는 진정성의 문제라 생각한다. 그 가능성을 알려주고 싶어, 설문지를 학교에 전달해 선생님들이 읽어 보게 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IRPG(Interview Role Playing Game) 취업역량 강화 교육이다. 2020년에 부산의 특성화고를 대상로 10개 학교 1300여명이 교육을 받았다. 2021년에는 15개교 1800여명이 교육 받았고, 올해는 대상자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강사들을 위한 표준 매뉴얼의 소개글은 이렇게 마무리 했다.



화면 캡처 2022-04-14 0751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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