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결정은 책임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책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삶도 그렇다.
오늘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일이나,
수십 조 예산을 결정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뭔가를 결정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과 거리를 얼마나 둘 것인지를 선택할 뿐이다.
삶이란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의 산물이다.
삶의 노력은 두 가지를 향한다.
자신이 저지른 크고 작은 잘못을 평생 돌아보며 다음에는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자신의 자랑스런 결정을 돌아보며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책임지는 일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요즘에는 취준생들도 그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에서 어디까지가 끝인지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한 때 쓰레기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 한 화학 권위자와 비닐 봉지의 분해에 대해 짧게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비닐 봉지가 분해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500년이라 한다면, 500년 뒤에는 비닐 봉지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인가 물어보았다.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분해는 물리적 분해와 화학적 분해가 있고,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 분해는 물리적 분해라고 했다. 물리적 분해는 쉽게 말해, 잘게 쪼개지는 것이라 했다.
비닐을 아무리 잘게 잘라도,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잘게 분해해도 비닐 봉지라는 물리적 존재는 형태와 위치만 다를 뿐 그대로라고 대답했다.
또 물어보았다. 비닐 봉지가 화학적으로 분해 되어 완전히 사라지는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고.
비닐 봉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적 조건에서는 화학적으로 분해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비닐봉지의 분자 구조는 영원하다는 뜻이다.
2022년 4월 21일에, 해운대 앞바다에 청산가리 1리터를 버리면 어떻게 될까?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지구 바다 전체에 그 청산가리액이 완전히 희석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4년쯤이라 들은 것 같다.
우리가 버린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지구라는 거대한 공간에 희석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쓰고 버린 비닐 봉지 한 장, 세면대에 흘려보낸 손 세정제 한 줌의 존재를 무겁게 여긴다.
정치하는 사람,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책임이라는 말을 일회용 비닐 봉지보다 무겁게 받아들이면 좋겠다.
강풍에 하늘 위로 날아 올라,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검은 비닐 봉지보다는 정치인의 말과 행동이 조금만 더 무거웠으면 좋겠다. 쪼끔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