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피라



꿈은 두 가지가 있다. 말하는 꿈과 보여주는 꿈. 말하기만 하는 꿈은 허언증이라 불린다. 말하고 보여주면 꿈의 실현이라 한다. 물론 말하지 않고 보여줘도 꿈의 실현이다. 그런 경우 타인은 우연이라고 말한다. 사실은 오랜 꿈이었다고 말해야 우연에서 꿈의 실현이 된다. 비밀을 폭로하듯 우연이 아님을 말하면 타인은 감동한다. 질투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타인도 있다. 실현된 꿈에 오래 동안 취해 있으면 다시는 꿈꾸지 못한다. 또 다른 여행지로 자유로이 떠나듯, 성취감과 자아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꿈이 생긴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걸 배움 혹은 성장이라 부른다. 형식에서 벗어나는 건 쉽고, 내용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다. 형식과 내용이 일치해야 자유롭다. 내용의 기원, 내용을 만드는 뿌리는 표현이다.




꿈의 실현이란 말과 행동의 간극에 관한 문제다. 언어나 문자로 표현되지 않는 꿈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고양이의 꿈이 무엇인지도,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 자신도 잘 모를 것이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공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100만 팔로워에게 공표하든, 열쇠 채워진 일기장에 수줍은 메모를 하든 표현되어야 한다. 표현은 인간의 존재 방식이다. 존재하지 않는 자는 살 수 없듯, 표현되지 않는 꿈은 이룰 수 없다. 꿈이란 표현이다. 표현이란 꿈을 존재를 탄생시키는 행위다. 표현하지 않는 꿈은 실현되어도 이뤘다 말할 수 없다. 내면의 무엇을 단 한 번도 표현하지 않으면 꿈을 생각할 수도, 가질 수도, 이룰 수도 없다.




바람의 형태로 표현된 생각과 감정이 꿈이다. 표현의 대상은 타인, 자신, 세상(비인간)이다. 표현의 방식은 생각, 언어, 문자, 행동이다. 나의 표현으로 대상과의 상호작용이 많이 이루어지면 인플루언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호작용은 변동성이다. 꿈은 변화의 방향과 내용에 관한 생각이다.




모두들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특히 학생들에게 꿈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바람직하게 보지 않는다. 꿈을 가지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한심한 인생이니, 백화점에 아이들을 풀어 놓고, 1시간 안에 사고 싶은 물건 하나씩을 골라라고 하는 방식의 교육은 생각할 점이 많다. 선택지를 많이 준다고 다양성 교육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표현에서 기원한다. 창의성 교육이란 없는 선택지를 생각하고 표현하게 돕는 과정이라 본다. 없는 선택지를 만들어 내는 것, 기업의 문제 해결 과정이기도 하다.




꿈의 시작은 표현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표현은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비롯된다. 있는 그대로의(진실한) 생각과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 그 표현에 대한 상호작용(피드백)을 통해 알게 되는 덤성덤성한 나를 조금씩 채워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무엇이라 부르든, 학교 수업 시간 대부분을 채우는 활동이 되면 좋겠다. 삶에 꿈이 없다면, 그 이유는 생각을 열고, 감정을 열고, 입을 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거다.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의 입이 열리고, 쉬는 시간에는 교사의 입이 열리는 교실을 꿈꾼다. 그래야 즐거운 학교가 될 것 같다.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걸 교육의 목표로 삼아도 될 듯 하다. 그들이 졸업하면 즐거운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을 테니. 그게 우리가 꿈꾸는 사회 아닌가? 그게 삶의 본질 아닌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과정을 표현과 상호작용이라 부른다. 싹트고 자라나는 과정 없이 열매 맺을 수 없다. 의미 있는 과정 없이 열매를 맺은들 뭐하랴. 목적 중심의 수경 재배로 자라는 식물도 열매를 맺는다. 맺은 열매를 뺏긴 식물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강제된 이타성 혹은 일방적 인정감 말고 무엇이 있나? 학교가 아이를 수경 재배하는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가 인간을 수경 재배하는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 개발의 목적이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에게 타자다. 나의 욕망이 타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게 나를 위한 삶이라 생각한다. 그런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한 평의 땅을 찾아 씨앗을 심고 가꾸는 일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텃밭 앞에 서서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 그게 꿈이다. 걷어 부친 팔뚝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텃밭을 바라본다면 꿈은 이미 반쯤 이뤄진 것 아닌가 싶다. 나머지 반은 알 바 아니다. 딱 50%만 생각하자. 꿈은 100%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시작에 관한 문제고, 50%까지 가는 문제다. 우연, 변수, 유전, 조건, 무엇이라 불리든 나머지는 50%는 의지 밖의 문제다. 나머지 50%를 변명, 핑계, 오만, 독선으로 채우지 말고, 겸손, 위안, 초월, 공감으로 채워가는 사람으로 커가는 교육이 필요하다.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뭔가가 생기고 실현된다. 그 뭔가는 꿈, 목표, 욕망 등 다양하게 불릴 것이다. 그 과정은 일이라 불리기도 하고, 삶이라 불리기도 할 것이다. 그 과정에 필요한 능력을 진로 역량, 직무 역량, 취업 역량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결과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불려도 상관없다. 결과라는 출력값이 없어도 뭔가를 기꺼이 입력할 수 있는 삶이 좋을 것 같다. 나는 그걸 자유라 이해한다. 자유롭지 않은 꿈은 꿈을 가장한 억압이라 생각한다. 교육을 가장한 교육이 저무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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