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by 피라


대학이 어려워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친다는 말이 계속 들린다. 대학은 옛날의 아버지와 닮은 것 같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는데, 옛날 생각에 갇혀 권위를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과 닮았다. 대학의 목표가 권위인지, 인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데도 별 효과가 없다 들었다. 대학뿐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이 나라의 학교라는 학교는(수도권 중심의 몇 학교 빼고)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 정점이 대학이다.


대학의 문제는 유용성의 문제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질적 유용성이다. 대학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내 삶에 도움이 되는지다. 내 삶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 행복의 문제, 기대와 성취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내 삶의 이유를 찾고, 꿈꾸는 가치와 행복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받는 문제다. 모든 대학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광고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대학을 나와도 최저임금의 안정적 직장도 구하기 힘들다. 물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학을 나와서 그런 직업을 가진 것인지, 그런 직업을 가질만한 역량을 지닌 이가 대학을 나온 것인지 인과관계를 밝히기 힘들다.


초등학생은 좋은 중학교를 가려 하고, 중학생은 좋은 고등학교를 가려 하고, 고등학생은 좋은 대학을 가려 한다. 대학을 가면 좋은 곳에 취업을 하려 한다. 우리 나라 진로 교육의 전부다. 아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전부다. 교육부도 시골의 학부모도 똑같은 생각인 듯 하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교육이다. 대학 입학을 도와주는 것이 공교육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교육이 죽었다는 것은 대학이 죽은 것이고, 대학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신입생 모집이 잘 되어야 대학이 사는 것이 아니다. 졸업 후 학생들의 삶이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 대학이 사는 길이다. 학생들 현실의 삶, 미래의 삶에 진짜 필요한 것을 고민하지 않고, 당장의 신입생 모집이 모든 것이라 생각하는 대학은 마땅히 죽어야 된다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의 유용성은 대학 졸업 이후다. 대학 졸업 후에 그 동안 받은 교육이 자신이 삶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는 과정도 유용해야 한다. 교육 받는 동안에는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 졸업 후에 갑자기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그건 환상이다. 그건 허구헌날 자신을 때리는 남편을 생각하며 지금은 나를 때리지만 언젠가는 날 때리지 않는 좋은 남편이 될 거야라고 믿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 본다. 스펙 쌓기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이걸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기도 싫지만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스펙을 쌓는다. 스스로 볼 때 화려한 그런 스펙들은 기업에서 대부분 휴지조각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 행위에 대한 의미를 스스로 알지 못하는 자는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든 대학이 신입생 모집을 할 때 첫 번째로 홍보하는 것이 취업이다. 여러모로 안타깝지만, 백번 양보해서 교육의 목적이 근사한 직업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한다면, 교육(대학)은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 권위적 아버지처럼 대단한 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홍보를 할 뿐이다.


공교육이든, 대학이든 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걸 연습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삶과 일은 비슷하다. 직업을 가지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일하면서 말해야 하는 이유는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이유는 기업의 일 대부분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생각을 서로 잘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연습과 시행착오가 필요한 일이다. 입 다물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적 없는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일을 잘 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런 지원자는 뽑지 않는다. 공부 잘하는 것과 일 잘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이 살려면 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데 필요한 실질적 자질을 가르쳐야 한다. 그건 전공 지식 조금, 자격증 몇 개, 프로젝트 경험 몇 개, 자소서 적는 법, 면접하는 법을 아는 것과 상관 없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은 기르는 법은 따로 있다. 어떻게 살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가치와 의견을 배우는 것, 언제나 배우고 성장하려는 마음을 어떤 상황에서도 유지하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타성이다.


인간의 행동은 3가지다. 1. 나에게 좋고 타인에게 해가 되는 행동, 2. 나에게 해가 되고 타인에게 좋은 행동, 3. 나에게도 좋고 타인에게도 좋은 행동. 기업 행위란 3번의 행위를 집단으로 하는 과정이다. 세상(고객, 소비자)에게 좋은 일을 해서, 내게도 좋은(수익) 일이 생기도록 만드는 일. 그것이 성장하는 기업의 행위다. 모든 직업도 마찬가지다. 직업이 생겨나고 직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와 그런 이타적 행위로 인해 내게 도움이 되는 과정이 지속되어야 한다. 사생활에서 이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직업적으로 좋은 아이템을 떠올리고 잘 추진하기란 어렵다. 좋은 아이템이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기면 지갑을 연다.


내가 세상에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타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자기 희생의 이타성이 아니라, 자기발견의 이타성은 교육의 목적일뿐 아니라, 비즈니스의 목적이기도 하다. 사람이라는 한 존재로 태어나 나와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배우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과정. 그런 것이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교육이다. 그런 교육은 기업에서 원하는 실질적 직무 역량의 토대이기도 하다. 가장 현실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가장 실용적인 교육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교육의 목적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극과 극이 통하듯 말이다. 대학이 이런 사실을 모르는지, 알면서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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