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쯤부터 14살까지 살았던 어릴 적 집은 110평이었다. 집집마다 정원사, 운전사, 식모(입주 가사 도우미)들을 둔 크고 세련된 저택들이 있는 동네였다. 부산의 가장 큰 부자들이 살았던 동네들 중 하나인 구덕산 등산로 초입 동대신동 주택가였다. 지금으로 치면 해운대 아이파크나 엘시티 정도가 될런지. 다른 집들의 평수도 우리집과 비슷했는데, 몇 곳은 집이 없는 빈터였다. 110평 우리집은 바로 그 빈터 중 하나였다.
빈터 구석 한 켠에 철거하다 남은 벽체만 남은 작은 구조물이 있었다. 그건 예전에 누군가 살았던 방의 흔적이었다. 5평쯤 되는 그 공간에 얼기설기 각목으로 구조를 만들고 합판을 얹은 후 비닐로 지붕을 마감한 공간은 110평 공간 중 유일하게 비를 맞지 않는 곳이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 6명이 살았다. 엄마, 아버지, 큰 형, 누나, 작은 형, 그리고 나. 그 공간 이불을 펴 놓고 다이빙을 하고, 온갖 놀이를 하고, 글을 배우고, 숙제를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작은 몸이었지만 똑바로 누우면 가족들과 몸이 서로 닿았다. 이불 속에서 모로 누우면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걸 깨우치던 어린 시절이었다. 누군가와 부딪힐 때 피하는 버릇은 그때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런 회피의 태도가 쌓이고 쌓이면 가끔 폭발하듯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버릇과 함께. 방에 있어도 잡초가 자라는 빈터에 있는 듯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바깥의 소리와 공기를 느끼며 잠을 잤다. 아주 추운 겨울에는 자고 나면 머리맡 그릇에 담긴 물이 꽁꽁 얼어 있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봄과 가을이 좋았다. 가장 호사스러운 일은 눌러붙고 찢어진 커피색 장판에 엎드려 새우깡 먹으며 책 읽다 주룩주룩 빗소리에 빠져드는 것이었다. 바깥은 비가 오는데, 비를 맞지 않는다는 것, 바깥은 추운데, 떨지 않는 것, 그리고 약간의 먹을 거리와 미지의 세계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과의 대화. 9살 시절 경험했던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장면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넓은 빈터 한구석에 엎드려 봄비 냄새 맡으며 책 읽는 빼빼 마른 아이가 보인다.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아무 말이 없다.
빈터 집에는 수도가 없어 일주일에 두 세번씩 동신초등학교 앞 마을 공동 샘에 물을 기르러 갔다. 공사장에 버려진 합판, 각목, 철물 등을 이리저리 짜붙이고 바퀴를 달아 만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희안하게 생긴 리어카로 물을 날랐다. 집과 샘의 거리는 1km쯤 되었지만, 어릴 적에는 긴 여행처럼 느껴졌다. 집안의 통이란 통에 죄다 물을 채워 리어카가 있는 큰 길까지 옮겨 실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완만한 경사로였다. 아버지가 앞에서 끌고, 형제들은 뒤에서 밀고, 나는 손만 대고 걸었다. 어두운 저녁에만 물을 길렀는데,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낮에는 땀이 나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연유를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이 세상에 안 계시다. 너무 오래 동안 잊고 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가정 환경 조사라는 것을 했다. 살고 있는 집이 남의 집인지, 자기 집인지인지, 부모의 직업과 학력은 어떻게 되는지, 매월 얼마씩 버는지, 집에 전화기는 있는지, 수도는 있는지, 티비는 있는지와 같은 세세한 것을 적어야 했다. 대충 적으면 담임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엄마는 국졸, 아버지는 중졸이라고 적을 때마다 아버지라도 중학교를 나와서 덜 부끄럽다 생각했다. 수도도 없고, 티비도 없고, 전화기도 없다고 적을 때는 전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집에 라디오는 있었는데, 라디오가 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배운 것은 수치심과 감추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8살 어린 마음에도 왜 불필요한 것을 알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집이 가난하면 불쌍히 여겨 더 잘 대해 주려고 그러는 것인지, 문제라도 일으키면 가난과 말썽을 연결지으려고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오래전 부산의 8학군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잘 살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편애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릴 적 기억은 비교적 생생하다. 어떤 장면들은 어제 찍은 사진보다 더 구체적이다. 죽기 전에 시간이 된다면 그 장면들을 하나 하나 그려내고 싶다. 기억을 그려내다보면 기억 속에 감춰진 숨겨왔던 마음들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노화가 진행되는 51살의 나를 이루고 있는 감정과 생각, 태도와 습관의 시원을 찾아가고 싶다.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인간이라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역사를 거슬러 가야할 것 같다. 긴 세월 동안 몸을 이루는 세포가 수없이 새로 바뀌었을테니 형이하학적으로 어릴 적 나는 현재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는 좀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여자애 둘이 우리 집을 알고 싶다며 집요하게 따라올 때, 이제는 진땀을 빼며 도망가기 않을 것 같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나란히 길을 걷다가 우리 집이 보이면, "저기야..."라고 편하게 말하고 싶다.
그때 못했던 일을 이제라도 해보고 싶다.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서 옛날 생각을 한다. 비오는 날 빈터 한 구석 조그만 방에 엎드린 한 아이를 만나러 가고 싶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세 사람을 위해서다. 지금의 나와, 어릴 적 나와, 이 시간 자고 있는 아이. 이 세 사람을 위한 일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