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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by 피라


나도 법정에 가본 적이 있다. 퇴직 후 외국인 노동자 인권 단체에서 3개월쯤 풀타임 자원 봉사를 했을 때다. 산재로 손가락을 잃은 베트남 친구의 퇴직금 체불 소송을 맡았다. HR부서에서 몇 년 일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장 중심 근로기준법을 거의 알고 있으니, 임금 체불 소송쯤이야 품의서 한 장 적는 일보다 쉬웠다. 그래도 난 자료를 모으고, 정리했다. 판사의 질문과 고용주 혹은 고용주가 고용한 변호사의 반론에 대응하기 위한 거의 모든 준비를 했다. 주위에서 그렇게 준비할 필요 없다고 했다.


영화를 많이 본 탓이었다. 영화를 보면 변호사, 혹은 검사가 판사 앞에서 멋지게 자신의 논리를 피력한다. 나도 그런 장면을 생각했다. 한국의 재판 현장, 법정에 들어가 본 경험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첫 재판에서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재판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판사는 관심도 없다는 듯 사무적으로 이렇게 내게 물었다.


"합의할 생각 있나요?"


난 다음 질문, 말할 기회를 기다리며, "아니오!"라고 짧게 대답했다.


판사가 바로 말했다.


"다음 재판일은 0월 0일 입니다. 이상"


그게 끝이었다.

허탈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재판 준비를 했는데,

겨우, "아니오"밖에 할 기회가 없다니.

주위에 물어보니, 우리나라 재판은 원래 그렇단다.


다음 재판은 2달인가 뒤였다.

다음 재판은 어떨까? 그때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제대로 된 재판을 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진 말을 할 기회가 있을까? 여긴 한국이니 외국 재판과 다를 테고, 최대한 짧고 간단 명료하게 말하는 준비를 해야겠다. 내게 시간은 얼마나 주어질까? 30초? 10초? 하이쿠처럼 짧고 인상적으로 말해야겠다 생각하며 2달을 기다렸다.


두 번째 재판일이 되었다.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판사는 대뜸 퇴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게 끝이었다. 재판에서 이긴 기쁨보다 시시하고 허탈했다.

더 허탈한 것은 그래도 고용주는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 베트남 친구의 이름은 응웬이었다(성인지 이름인지 모르겠다. 풀네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응웬은 우리로 치면 '김'씨 정도일까? 젊고 착하고 밝고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친구였다. 처음 봤을 땐 장국영 같은 영화배우가 떠오를 정도로 잘 생긴 친구였다. 베트남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었다. 한국에 와서 손가락 3개를 잃었고(정확한 갯수는 아니다. 기억이 가물거린다.), 치료가 끝나지 않아 붕대를 감고 다녔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백수가 된 그는 정말 고맙다며 내게 밥을 사준다 했다. 밥을 얻어먹고, 우리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책이라도 한 권 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말과 영어로 된 '어린 왕자'를 사서 건내주며 미안하다 했다. 우리나라가 이것밖에 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어디에나 좋은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며, 고향 사람들도 똑같다며 밝게 웃었다.


2003년 가을부터 2004년 봄까지 있었던 일이다. 오늘 아침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18년 전 한국에 비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좋았는지 궁금하다.

좋아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겠다.

18년 전 나에 비해 나는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궁금하다.

같은 생각을 하면 같은 사람이고, 다른 생각을 하면 다른 사람인가?

같은 것이 과연 좋기만 한가? 다른 것이 과연 나쁘기만 한가?


그 친구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손가락이 사라진 자리에 마디만 남은 손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지 궁금하다.

내 생각은 가끔 할까?

아직 붙어 있는 내 손가락을 볼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을 가끔 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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