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때 내 앞에 앉았던 친구의 이름은 C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친구였다. 말이 별로 없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잘 말하지도 않고, 항상 은은한 미소를 짓는 친구였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았던 것 같다. 뭐든 이해하고 수용하는 참 참한 친구였다. 얼굴을 보면 그냥 "착함"이라고 쓰여진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만사가 악착 같았다. C는 악착같이 공부했다. 엉덩이에 본드를 붙인 듯 C는 책상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는 그런 친구였다. 전교를 통틀어 꼼짝 않고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성적이 점점 오르더니 서울대에 갈 정도가 되었고, 결국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다양한 친구들과 친했던 나는 C와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 밖 술집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고, 쉬는 시간에 잠시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무척 짧은 대화였지만 나는 C가 좋았다. 졸업하고 나면 C와 술 도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모두 졸업을 했고, 친구는 서울대를 다녔고, 나는 재수를 했다. 몇 년 뒤 C의 소식을 들었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S라는 친구가 C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C가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생전에 C와 종종 만났다고 했다. 자살의 이유를 한 마디로 말하면 열등감이었다. 삶의 모든 걸 바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서울대를 갔는데, 그곳에 가니 자신은 정말 초라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한다. 다들 자신보다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 형편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도 대단한 친구들을 보며 좌절했다 한다. 군생활 때 몸을 조금 다쳤단다. 제대해서도 불편했던 듯 싶다. C가 죽기 전날 저녁 S를 찾아 왔다고 했다. 평소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게 마지막 일 될 줄 몰랐다며 S는 말했다. S도 참 착하고 반듯한 생각과 태도를 가진 친구였다. 친구의 죽음 때문이었는지, S는 당연히 판검사가 될 거라는 주위의 기대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고향으로 내려와 작은 학원을 한다.
고등학교 문과에서 가장 공부 잘하고, 착하고, 참 바른 성품을 지닌 친한 세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는 23살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한 친구는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 시키는 일을 하고, 한 친구는 서울대 입학 직후 소식이 끊어졌다.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은 지 30년이 지났다.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많이 있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했고,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아직 못 다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함께 서울대를 다니는 머리 좋고 집안 좋은 쟁쟁한 친구들이 내 친구를 무시했을 지도 모르겠다. 경쟁의 상대로 생각하고, 경쟁의 깜도 안 되는 녀석이라고 일찌감치 무시했을 지도 모른다. 지방의 가난한 집안 출신, 순하고 착하기만 한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스스로 열등감에 휘말렸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아는 C는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겉은 부드러워도 얼마나 강하고 긍정적인 친구였는데,
서울대를 가든, 고등학교 졸업 후 검게 찌든 미끌미끌한 공장 바닥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렌치를 가져다 주는 삶을 살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자라 어떤 삶을 살아가더라도 병들고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삶을 향한 갈망과 노력이 자신의 삶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루지 못한 희망, 점점 더 노력해야만 꿈꿀 수 있는 희망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바라더라도 다가가는 과정이 목적인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게 자신만의 진로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다른 누구라도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가르칠 수도 없다면,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어려운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교육이 진지해졌으면 좋겠다. 일단 성적을 올리고, 일단 대학을 보내고, 일단 취업을 시키는 교육은 진지하지 않다. 진지함이란 시작과 중간 끝을 깊이 생각함에서 출발한다. 한 인생의 죽음을, 한 사회의 몰락을, 한 문명의 끝을 생각하는 태도로부터 진지함이 움튼다. <일단 대학>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어떻게 살 것인지 깊고 넓게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교가 그런 교육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면 내 친구는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착했던 그 친구의 삶으로 인해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곳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은 자들은 생각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다면 가능한한 오늘 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