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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by 피라



2002년에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살기 위해 다른 존재를 입에 집어 넣어 먹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앞에 감자 몇 개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닭이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배고플 때 굳이 닭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털을 뽑아 내고 칼을 갈아 닭의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뼈를 발라내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닭을 죽이고 손질해서 기름에 튀겨 먹는 선택보다는 감자를 삶아 먹는 선택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 끔찍한 일을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대신해 준다 하더라도 나는 닭보다는 감자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비건이 되었다.


비건 선언 후 친한 직장 동료는 나랑 밥 먹을 때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같은 팀에 기숙사 옆 방에 있는 동료라 토, 일요일에도 같이 밥을 같이 먹는 친구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이었다. 난 비빔밥을 싫어했었다. 2002년에는 식당에서 비건이 먹을만한 음식 찾기가 힘들었다. 비건이 된 후 나는 비빔밥만 먹었다. 채식주의자의 선택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기 고명과 달걀 프라이를 빼 달라고 주문했는데, 동료가 그러지 말고 자기가 먹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이후로 그 친구는 나와 비빔밥을 먹을 때 항상 달걀 프라이 2개와 두 배의 고기 고명을 먹었다. 그래서 그는 비빔밥을 먹을 때마다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나와 밥 먹는 것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몇 달이 흘렀다. 나는 계속 비빔밥만 먹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비빔밥이라던 그 친구는 점점 변해갔다. 같이 비빔밥을 먹을 때 말이 점점 없어지고, 표정은 시무룩해졌다. 나를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밥 먹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투정 부리듯 절규했다. 나 때문에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지긋지긋해졌다며 제발 좀 그만 해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계속 비빔밥을 먹었다.


평일에는 회사 식당에서 3끼를 먹을 때가 많았다. 단체 급식에서 비건이 먹을 음식은 별로 없었다. 나의 메뉴는 주로 밥과 깍두기, 밥과 김치, 밥과 단무지, 밥과 시금치, 밥과 콩나물이었다. 가끔 운이 좋은 날은 두 가지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국을 먹을 수 있는 날도 드물었다. 가끔 고기나 조개가 빠진 콩나물국, 된장국이 나오면 행복했다. 비건이 되고 나니, 변화가 생겼다. 커피, 담배, 술 같은 것들이 저절로 끊어졌다. 가공 식품도 먹지 않게 되었다. 한 번은 몇 달 만에 오렌지 주스를 하나 먹었다가 1주일 동안 설사를 하기도 했다. 콜라를 마시면 졸도한다는 부시맨이 된 것 같았다. 잠자는 시간 빼고 일만 하는 삶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의미 있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퇴직했다. 33살이었다.


2002년부터 7년 정도 비건이었던 것 같다. 시작한 때는 정확히 기억하는데, 끝난 때는 모르겠다. 여행을 떠나면 일탈하기도 했다. 루앙프라방에 두어 달 머물 때는 고기 국물 쌀국수를 먹었다. 네팔과 인도에서는 염소젖이나 우유가 들어간 짜이를 마셨다. 오지 원주민이 정성스레 주는 정체불명의 고기를 먹을 때도 있었다. 일상에서도 유제품 먹을 때가 늘어났다. 고기를 가끔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4년쯤부터 다시 음식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채식 초기에 직장 동료와 중국집에 가서 마파두부라는 것을 시켰다. 난 그때 마파두부는 파와 두부로 만든 음식인 줄 알았다. 믹스기로 갈아버린 듯한 고기와 밥이 섞인 마파두부를 보고 당황했었다.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심정으로 깨알 같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골라내기도 했다. 난 음식 가리는 사람을 싫어했다. 그러다가 누구보다도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되었고, 다시 음식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잡식 동물에서 초식 동물이 되었다가 다시 잡식 동물이 된 경험을 통해 달라진 것이 있다. 비건이 되기 전에는 음식 가리는 사람을 보면 그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비건이 된 뒤에는 음식을 가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다시 잡식이 된 뒤에는 음식을 가리는 것이나, 가리지 않는 것이나 다 좋다고 생각한다. 싯달타는 탁발할 때 사람들이 주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최소한만 먹었다 한다. 우리 삶에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소한의 필요는 삶의 바탕이기도 하다. 본질의 뜻이다. 힘든 삶을 이겨내는 방법은 삶의 본질을 생각하는 것이다. 비건의 마음으로 고기를 먹는 삶. 그게 내 인생인 것 같다.


배고픈 내 앞에 감자 세 알과 닭 한 마리가 있다면 나는 감자를 삶아 닭과 나눠 먹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게 인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고, 닭만 있다면 닭과 함께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문득 깨달음에 벌떡 일어나 닭을 죽여서 먹는 사람이 되더라도 자괴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다른 존재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만나더라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산 사람과 죽은 닭을 생각하며 삶의 숭고함을 알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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