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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책방 May 19. 2022


2007년쯤 일이다. 부산 반송 지역 복지관에서 노인들 대상으로 환경 교육을 해 달라고 했다. 윗 동네의 운봉복지관, 아래 동네의 반송복지관이 연합해 기획한 노인들을 위한 환경 교육이었다. 조금 난감했다. 지구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 육식의 폐해, 해양 투기, 자원 재활용 등과 같은 이야기가 평균 연령 70대 노인들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강의 안을 정했다. 노인들의 젊은 시절의 사진들을 검색했다. 주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최민식작가의 사진이 많았다. 노인들의 희망과 좌절, 일상과 꿈이 출렁였을 어린 날, 젊은 날들의 사진들이었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 서민들의 일상 사진 사진을 파워 포인트 슬라이드에 하나 하나 담았다. 엄선해서 20여 장을 추렸다.


강의 날, 노인들 앞에 선 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기후변화를 주제로 지구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리고는 준비한 50~80년대 초반 이웃들 삶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한 장 보여주었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사진을 보여주니 내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노인들을 앞다투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사진 속의 삶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사진과 연관된 자신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 가족의 이야기, 시대적 상황을 말했다. 사진에 나온 조그만 물건의 용도에 대해 서로 해석이 엇갈려 서로 다투기도 할 정도로 노인들은 사진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노인들은 자신들의 지나온 삶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자신들 마음 속에 꼭꼭 숨어 있던 젊은 시절 자신 삶의 한 컷 한 컷 때문에 노인들의 마음과 입이 열렸다.


내가 노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배우고 느꼈다. 난 중간 중간 궁금한 걸 물어보기나 하며 다음 사진으로 넘기기 위해 무선 프리젠터의 버튼을 누르기만 했다. 마지막 사진을 넘기고 나니 1시간 40분이 지나 있었다. 내가 말할 시간이었다. 


먼저 질문을 하나 했다.


"지금까지 어르신들 젊은 시절 여행을 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잘 살고, 훨씬 좋은 집, 훨씬 잘 먹고, 풍족하잖습니까? 그때가 살기 좋은 시절인가요? 지금이 살기 좋은 시절인가요?"


침묵하는 몇 명의 노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예전이 훨씬 살만한 시절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니, 그때는 배고프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정이 있었다고 했다. 처음 보는 타인도 힘들면 누구든 안 가리고 도와주고 챙겨주는 정이 있었다고 했다. 노인들의 기억이 왜곡되었는지, 단순히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노인들의 말과 눈빛은 단호했다. 그때가 더 살만한 세상이었단다. 지금은 돈밖에 모르는 세상이라 살 맛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강의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말을 했다.


"제가 오늘 어르신들 앞 선 이유는 지구환경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원인은 정말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인과관계가 변하기도 하고요. 저는 생태 철학을 공부하며 환경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찾은 원인은 생태적 태도입니다. 환경 문제의 원인은 우리 삶에서 생태적 태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만물을 존중했다 합니다. 사냥을 할 때도, 미안하다. 나와 가족이 배가 고파 너를 죽여야겠다. 나를 용서해 주렴. 죽인 짐승의 몸도 맨 땅에 두지 않고, 나뭇잎 등을 깔아 그 위에 두었다고 합니다. 인디언뿐이겠습니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천의 물고기들이 해가 될까봐 뜨거운 물을 식혀서 개천에 버리고, 까치가 배고플까봐 까치밥으로 감나무에 감을 몇 개 남겨두는 것처럼 자연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는 모두에게 있습니다."


"19세기 조선에 들어와 전국을 여행했던 한 선교사 자신의 봤던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얘기했습니다. 한 노인과 소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는데, 소의 잔등에는 짐이 실려 있었다 합니다. 그런데, 조금 걷다가 노인이 소의 짐을 지고 가고, 또 조금 걷다가 다시 소의 등에 짐을 올리고, 또 조금 걷다가 다시 소의 짐을 자신이 지기를 반복하더랍니다. 노인도 기력이 없지만, 소가 힘들까봐 번갈아가며 짐을 나눠 지는 모습이었답니다. 선교사는 조선 땅 곳곳을 다니며 조선 민중의 그런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합니다."


"지구 환경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대상을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자연을 수단으로만 삼고, 그런 태도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고, 그런 태도는 자신조차 수단으로 여깁니다. 어르신들이 예전이 더 살만했다고 여기는 건 그때는 서로를 수단으로 여기는 일이 지금보다 덜 했기 때문입니다. 생태적 태도는 대상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가슴 속에 있는 생각과 경험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습니다. 자식이든 손자든 세상의 젊은 사람들과 생각과 말이 통하지 않는 때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그런 이들에게 생태적 태도를 말해주면 좋겠습니다. 자연과 사람, 모든 존재를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를요. 우리가 잘 살게 되면서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서요. 침묵하시지 마시고 잊힌 가치를 이야기해 주면 좋겠습니다. 생태적 태도에 관한한 어르신들이 저보다 더 잘 아시니까요. 저는 머리 속 생각으로만 알지만, 어르신들은 힘든 삶을 사시며 몸으로 경험했으니까요."


그리고 천천히 깊이 인사를 하고 강의를 마쳤다.


이듬해 또 강의를 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돌아가신 엄마 70대의 한 모습이 떠오른다.


가족 여행을 떠나 한 콘도에 묵었는데, 씽크대를 뒤져 채소 등을 씻을 때 사용하는 큰 플라스틱 그릇을 화장실로 가지고 가셨다. 조금 뒤 뭐하나 보니 세수한 물을 모아서 그 물로 양말을 빨고 계셨다. 이런 곳까지 와서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핀잔을 주자. 아무리 비싼 돈을 주었다고 해서, 남의 물이라고 해서 함부로 쓰면 안 된다 하셨다. 사람은 그러면 안 된다 하셨다.


엄마가 유난스러운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오랜 세월 살아왔다.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삶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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