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옹책방 May 14. 2022

강의

지난 수요일에 고등학생 대상 특강을 했다. 다시는 일방적 강의는 하지 않으리라 굳게 작정한 후의 첫 강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소통하는 강의를 지향했다. 두 시간이면 언제나 최소 30분 정도는 질문 대답 시간에 할애해 왔다. 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질문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학생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은 학생 탓이라 생각했다. 생각을 바꿨다. 학생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궁금해서 미칠  지경으로 만들지 못하는 강사의 잘못이라고. 학생들이 생각을 열고, 입을 열게 만드는 것, 그것이 강사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바꿨다. 




100개의 유용하고 좋은 정보를 전달하고, 10개의 뭉클한 메시지를 전달해서 감동의 도가니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이 한 번이라도 말하게 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건 수영을 배우려는 사람이 수영 잘하는 법을 설명한 유튜브 영상을 수백 개 보는 것보다, 물 속에 들어가 음~파, 음~파 하며 발차기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이 훨씬 나은 것과 같은 이치다. 교육은 변화의 문제고, 아이와 학생들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행이 부족해서라 본다. 교육적 실행이란 낯선 것, 망설여지는 것, 부담스러운 것, 내키지 않는 것을 기꺼이 해보는 행위다. 하고 싶은 것, 하고 있는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굳이 배울 필요 없다. 교육은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일이다.




가장 좋은 강의는 학생들이 묻는 시간으로 채워진 강의다. 그 다음으로 좋은 강의는 학생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이 대답하는 시간이다. 그 다음으로 좋은 강의는 강사의 이야기에 학생들이 재미있게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 궁극적으로 꿈꾸는 최고의 강의다. 그건 강사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도무지 대답할 수 없는 들어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심오하고 본질적 질문을 받고 그건 내가 모르니 좀 더 공부해서 말해주겠다고 말하는 시간으로 채워지는 강의다. 그런 강의를 생각하면 설렌다. 강사 스스로 성장하고 배우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초대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좋은 강의는 위 네 개의 시간이 적절히 섞인 시간일 것이다. 생각과 입이 닫힌 학생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질문이 필요하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학생의 생각과 마음을 여는 표정, 행동, 이야기, 질문, 대답을 통해, 나도 배우려는 진실된 마음으로 서로 대화하는 것, 그것이 좋은 강의라고 생각한다. 참 어렵지만 해야 할 일이다. 




인터뷰 방식의 강의를 시도한 결과 정말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싶으나, 그렇지 않았다. 1시간 50분 동안 질문을 주고받은 시간은 약 50분 정도, 1시간은 내가 말하는 일방적 시간이었다. 처음 30분은 즐겁게 서로 웃었다. 모든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감이 참 좋았다. 40분부터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지루해하는 학생들이 몇 명 보이자. 일단 멈추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질문을 하며 강의를 이끌어갔는데, 15분 지나니 또 느슨해진다.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내가 주도해서 이야기했다. 일방적 시간을 보내니 분위기는 양분되었다. 집중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이 나뉘고, 몰입도와 재미가 떨어진 학생들이 늘어났다. 다시 학생 속으로 들어가 질문과 대답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반복했다.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하는 엔딩은 좋았다. 




두 가지를 확인했다. 일반적 정보 전달보다는 질문과 대답의 시간을 보낼 때 학생들의 몰입도와 재미가 더 높다는 것(물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다. 이들을 어떻게 끌어갈까가 문제다.) 인터뷰 형식의 강의의 열쇠는 강사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는 의미있고 재미있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지는가에 달렸다는 것. 그건 많은 준비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 질문이 준비되면 인터뷰 강의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가능할 것 같다.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그런 수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수업을 직접 해보기도 하며 3년 동안 4천 명 가량 모니터링한 결론이다. 일부 교사(강사)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 우리 아이들은 토의,토론 수업 안된다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영화의 갈등이 고조될 때 알고 보니 악당은 주인공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반전처럼, 문제는 그들(학생)이 아니라 내게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설사 내게 문제가 없고, 그들에게만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풀어나갈 책임이 내게 있다 생각한다. 학교 안에 있던 밖에 있던 이런 태도가 교육의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물론 말은 쉽지 현실은 어렵다. 하지만 조금씩 바뀌리라 믿는다. 그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한다. 삶도 교육도 상호작용이다. 한 사람의 진로는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진다. 진로는 어느 날 작정하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결심했다면 그 전에 자잘한 상호작용을 통한 자잘한 결심과 실행이 있었던 탓이다. 자신 진로를 위한 의미 있는 실행이란 <생각하고 말하고, 상대의 말을 생각하고 다시 말하는 반복 과정>이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교실에서 학생의 입을 열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된다 믿는다. 침묵하는 교실에는 학생의 미래도, 교육의 미래도 없다. 생각이 멈추고 상호작용이 멈추면 너의 삶도 나의 삶도 없다.




지난 수요일, 강의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학생이 수줍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내게 말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감사드립니다"




단 한 명만 있으면 된다. 나의 강의든, 나의 책이든, 나의 삶이든, 그것으로 인해 단 한 명의 삶에 의미 있는 뭔가를 주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것을 계속 하는 충분한 이유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