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일 진로,취업 컨설팅을 했다. 온라인으로 7시간 동안 7명의 학생들과 만났다. 오랜만에 학생들을 고민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해 주었다. 나는 컨설팅 할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한다.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무엇을 선택할 지는 스스로 판단하라고 한다. 짧은 시간 동안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잠시라도 생각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긴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른 전문가와 의견이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 자칭 타칭 진로취업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부분 비슷하다. 최대한 빨리 진로를 정해서, 그 진로에 맞는 로드맵을 짜서, 그와 관련된 스펙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그리고 자소서, 면접 스킬을 장착하는 것. 그러면 취업이 되고 자신의 진로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래서 컨설팅 등을 통해 1. 자기 분석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할 것(직무적성, MBIT검사가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가끔 타로, 사주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2. 진로를 선택했으면 각종 그에 맞는 공부, 진학, 경력, 자격증, 활동 등을 해서 포트폴리오를 화려하게 만들 것. 3. 지원하는 기업과 직무와 포트폴리오를 잘 결합해서 자신만의 자소서를 쓰고, 면접 스킬을 연마할 것. 뭐 이 정도가 기본 골격이다. 나는 이런 접근을 싫어한다.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의 의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학생에게도 기업에게도 큰 의미가 없다.
위의 전형적인 접근은 소수의 학생들에는 유효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길을 찾은 운이 좋은 학생들 말이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 한 분야에 삶을 바칠 정도로 열정과 관심을 가진 경우를 만난다. 그런 학생은 이미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경우에는 관심과 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선택과 집중의 방식이 바람직하다 본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딱히 좋은 것도 없고 딱히 싫은 것도 없는 상태다. 내 속에 뭔가가 있는데 그것과 대면하며 그것을 표현하지 못해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무엇이라도 선택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과 조바심의 상태.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돌며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학생들이 뭘 어떻게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민만 한다. 100명의 학생들 중 90명은 공기업을 선택할 지, 사기업을 선택할 지 고민이라고 한다. 다 똑같다. 나는 묻는다. 왜 지금 둘 줄 하나를 선택해야 하냐고? 그런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는다. 선택 같은 건 하지 말라고, 선택이 시작점이 아닐 수 있다고 나는 말한다. 나중에 어디에 지원을 하든, 어디에서 일하게 되든 면접관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일 될 지, 어떻게 일하는 사람이 될 지,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지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하루라도 빨리 진로를 결정하고, 스펙을 쌓고, 취업스킬을 익히는 것은 덜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일은 나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나다운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며 배우는 것이라 말한다. 나다운 것은 내 감정, 내 취향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나다움이란 내 삶의 이유를 알고 그 이유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인생은 조금 길게 봐야 한다. 당장 취업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원하는 곳에 취업 후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이유를 알려면 질문하고 배워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틀에 박힌 취업준비를 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고민하며 행동하는 학생이 훌륭한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볼 수 있다.
별 이야기도 아닌데, 학생들은 큰 도움이 되었고, 고민이 해결되었다며 고마워했다. 나는 말한다. 알고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 앎을 계기로 삶의 근육을 꾸준히 키워야 한다고, 그게 어렵다고. 정말 어렵다고, 어렵지만 해야 하고, 하다보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걸 보게 되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진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그러니 지금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똑똑해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조건과 상황은 다 달라 보여도 세상 사람들은 다 비슷하다 말한다. 그러니 힘들 때가 있어도 타인의 본질을 생각하며 자신 또한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말한다.
20년 동안 해 온 이야기고,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라 생각하는데, 학생들은 새로운 이야기라고 한다. 아직 나의 말이 효용이 있는 듯해 보람을 느끼지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세상은 자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답답하다. 해운대 앞바다에 1.5리터 물을 부으며 바다가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인생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