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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Jul 03. 2022

문지기


나는 문지기였다. 대학 졸업을 하고 첫 직장에서 문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입구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 회사 안으로 들일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일을 했다. 평소에는 출입문을 단단히 막고 있다가 괜찮은 사람이 보이면 문을 열어 회사 안으로 들였다. 그렇게 회사 안으로 들여 보낸 사람은 한 해에 1,000명 전후였다.


내가 입사했을 때 회사의 이름은 LG LCD라 불렀다. 그 해 여름에 회사 이름이 LG.Philips LCD로 바뀌었다. 새로운 회사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큰 행사가 열렸다. 그때 유명한 가수 그룹이었던 H.O.T가 와서 축하 공연도 했었다. 그 날 나는 문지기 일을 멈추고 H.O.T를 보기 위해 인산인해처럼 몰려와 회사 바깥에 끝없이 서 있는 입장객들의 줄을 점검하며 행사장에 바깥 상황을 무전으로 전하는 일을 맡았다. 전후무후한 행사는 무사히 잘 끝났고, 몇 년 뒤 회사 이름은 LG 디스플레이로 바뀌었다.


회사 문지기였던 내가 일한 부서의 이름은 인재개발팀이었다. 내가 입사한 1999년은 한국의 LCD산업이 기지개를 펴던 때였다. 삼성과 LG가 서로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고 경쟁적으로 공장을 증설하며 인원을 엄청나게 늘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일년 내내 1~2만 명의 지원자를 서류로 만났고, 2~3천 명을 면접봤다. 


회사에 들어 오려고 몰려 온 사람들 중에서 회사에 들일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나는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했다.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보내온 그들의 정보가 가득 담긴 서류를 먼저 검토했다. 그때는 우편 접수를 받았다. 적게는 4장, 많게는 10장이 넘는 입사 서류를 검토하기 위해 종이를 넘기다 보면 손가락이 아린다. 손가락도 보호하고 서류도 잘 넘기기 위해서 골무를 끼고 서류 전형을 했다. 지원자들은 정말 다양했다. 기재된 내용도 물론이거니와 지원서에 담긴 마음도 제각각이었다. 인생을 바친 듯한 정성에 숙연해지는 지원서도 있고, 정성은커녕 우리를 농락하려는 듯한 무성의에 서류 봉투를 뜯자마자 불쾌해지는 지원서도 있었다. 


문지기 업무의 시작은 지원자들이 보내온 서류를 보고 직접 만나볼 가치가 있는 사람과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다. 면접 대상자를 추려내는 일 말이다. 판단의 기준은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란 개념과 비슷하다. 간단한 것 같지만, 무척이나 복잡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 성적, 자격증 등의 객관적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원자 한 명 한 명이 수학 문제라고 치면, 그들이 제공한 그들 자신에 대한 여러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일을 잘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 하지만 수학 문제처럼 정해진 답은 없다. 어떤 관점, 어떤 기준으로 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어렵다. 서류전형에서도 어렵고, 면접 전형에서도 어렵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경험이 쌓이면 쉬워진다. 문지기 초짜였던 처음에는 입사서류를 아무리 봐도 합격으로 분류해야 할 지, 불합격으로 분류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면접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보 면접관 시절에는 면접이 끝난 뒤에도 합불 판단을 못해서 서류를 뒤적이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음 조 면접자들이 들어와버려 당황한 적도 있었다. 


뭐든 경험이 쌓이면 익숙해진다. 어리숙한 초보 문지기였던 나는 얼마 뒤 빠르게 문지기 업무를 수행했다. 마음만 먹으면 자소서 검토도 4초면 충분했다. 면접을 볼 때도 면접실에 들어오는 순간 판단할 수 있었다. 아무리 늦어도 5명의 지원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나, 자기 소개가 끝날 무렵이면 대충 판단이 되었다. 나머지 면접 시간은 나의 판단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 춤추는 세계에서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단한 속도로 결론을 도출하는 감각이 생긴 것이다. 다른 인사 업무를 하면서 매년 1~2만 장의 지원서, 1~2천 명을 면접자들을 만나다 보니 문지기 일의 속도와 효율성은 점점 늘어났다. 채용 업무에 필요한 감각이다. 


퇴직 후에는 문지기 일을 하면서 익힌 나의 감각을 팔아 먹었다.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고 해석하며 사람을 선택하는지에 대해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모의 면접을 하고 컨설팅을 했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졌다. 한 때는 한 달에 10여일 일하고 천 만원 넘는 돈을 벌기도 했지만 점점 그런 일이 싫어졌다. 


나의 생각을 누군가에 말하려면 나 스스로 그렇게 믿어야 한다. 스스로 믿지 않는 일을 타인에게 말하는 건 어렵다.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은 사기꾼이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나의 경험, 나의 감각, 나의 생각이 누군가의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들에게 전하는 나의 말에 나의 마음이 담기지 않았다. 일단 대학을 가고, 일단 취업을 하려는 세태에 빌붙어서 그럴듯한 말을 하며 지갑을 채우는 삶 같아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했다. 나의 관심은 취업이 아니라, 삶이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취업하는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취업 특강, 자소서 클리닉, 모의 면접 등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살짝살짝 하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의미를 찾지 못했다. 재미가 없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고(알다가 모르다가의 반복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자랑할만한 삶도 아니라 학생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다.


결정적인 일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살 청년부터 고위 공무원직까지 많은 이들의 취업을 도와주었다. 내가 코칭하면 거의  다 합격되었다. 오만함이 절정에 이를 무렵,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순천에 사는 학생인데, 좋은 곳에 취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나는 일이 있어서 순천에서 그를 만나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내가 파악한 그는 가능성이 없었다. 그럴듯한 말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학생과 헤어져 해남 미황사로 가는 차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타인의 삶에 책임질 수도, 내 삶을 바쳐 책임지려는 마음도 없으면서 취업으로 타인의 삶을 책임져 줄 것처럼 말해 온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그 동안 될만한 사람들만 코칭한 것 아닌가 싶었다. 될만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일정 조건은 되는데 멘탈에 문제가 있는 경우, 멘탈은 좋지만 일정 조건이 되지 않는 경우다. 내가 만난 그는 둘 다 가능성이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취업 전문가라는 말은 나와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일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회사가 싫어 퇴직한 사람이 회사 들어가는 법을 말한다는 모순 말이다.


세월이 흘렀다. 취업에 관해 아직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진짜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시작도 안 한 것 같다. 20년 넘게 입사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무 역량이라고 말해왔다. 수많은 이들에게 강조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다. 그렇게 강조한 직무 역량이 도대체 무엇인지 상세하고 친절하게 말해 주는 것이 내 말에 책임지는 거라 본다. 취업하는 방법이 아니라, 일을 잘하는 방법이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살 것인지 묻고, 스스로 대답을 찾아갈 수 있어야 실질적 직무 역량으로 이어진다. 자소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다. 스펙을 쌓는 것도 그 다음의 문제다.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순서의 문제가 아니다. 매 순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문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의 매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상호작용은 모두 관심이 가고 재미있다. 단지 취업과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좀 더 많기 때문에 그걸 통해 진로와 삶에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 특정한 것을 일반화시키는 건 유치하고 위험한 태도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뭐라도 해보면 그걸 통해서 삶과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거라 믿는다. 세상의 실체는 상호작용과정 그 자체 같다. 서로 다른 것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상태를 생명이라 부르고 싶다. 살아 있는 것들은 산 것처럼 살아야 한다. 죽은 척 하면 안 된다. 아직은 아니다. 


문 앞에만 서 있을 때가 아니다. 들어가든지 나오든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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