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타인터뷰 Nov 01. 2022

책임

아이는 남 탓을 잘한다. 컵의 물을 엎질러도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젓가락질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싫다며 그만 둔다. 세상을 구분할 수 있는 나이가되면 싫은 상황, 원치 않은 상황을 만든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양치질을 하는 것,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는 것, 추우면 옷을 입고, 더우면 옷을 벗는 것, 사탕과 과자를 덜 먹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동영상을 더 보는 것과 방 정리를 하는 것, 스스로 걸어가는 것과 안아달라 보채는 것, 수많은 좋음과 싫음 사이에서 아이는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는 결과의 원인을 찾는다. 아이는 대체로 남 탓을 한다. 타인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울고 화내고 토라진다.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남 탓을 덜 하게 된다는 뜻이다. 싫은 것과 좋은 것,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 해야 할 것과 귀찮은 것 사이에서 아이는 원하지 않은 상황을 참고 견디는 법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욕망 혹은 현실 자체를 다루는 법을 조금씩 배워 나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무조건적인 남 탓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생겼을 때 남탓부터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반사적으로 문제의 원인을 돌릴 누군가,  뭔가를 찾는데 익숙하다면 아직 아이의 정신 상태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오래전 직장에서 강조한 것은 팀웍이었다. 부서간에 문제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문제의 원인을 찾는 일이었는데, 문제가 다른 부서와 걸쳐 있는 경우 그 부서의 잘못으로 문제를 정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부서이기주의라고 불리는 태도인데,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본능적 태도다. 각 부서간에 서로의 잘못이고, 상대 부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다투기 일쑤였다. 그런 갈등의 상황에서 혜성같이 나타나 신박한 논리와 근거로 상대 부서의 잘못이라는 것을 입증하면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팀웍이라 여기기도 했다. 팀웍이란 모두가 힘을 합쳐 다른 부서로 책임을 돌리는 일로 착각한다. 조직 전체의 목표 혹은 조직을 넘어선 사회적 이익과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참 어리석은 태도였다. 


살면서 그런 태도를 종종 본다. 그릇을 깨뜨리고 난 뒤 다른 핑계를 대는 아이처럼, 문제가 터지면 다른 핑계를 찾아 쫓기는 꿩이 머리만 숨기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런 경우 공통적으로 보이는 건 책임을 질 누군가를 찾는 일이다. 중세의 마녀사냥처럼,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을 학살한 것처럼, 만만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런 일은 대게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그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만든다. 원인규명, 진상조사, 수사, 감사, 온갖 이름을 붙인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 한다. 그 댓가로 세금을 납부한다. 자신들의 안위나 이익, 혹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딴 곳으로 돌리는데 사용하라고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전 회사 다닐 때 보았던 부서이기주의의 모습처럼 사고를 치고 제 탓이 아니라고 우기는 아이같은 어른이 요즘 많이 보인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엄한 곳으로 책임을 돌리는데 안간힘을 쓰는 공무원들이 많다.다. 특히 선출직, 임명직 공무원들이 심하다.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엄청난 분노가 밀려 온다. 6개월을 일하든 5년을 일하든 자신의 삶을 걸고 자신의 일에 책임지려는 마음이 없다면 서지 말아야 할 자리다. 자신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어서라도 한 명의 국민이 행복하고 그들의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기 희생의 길을 걸어갈 각오가 없다면 넘보지 말아야 할 자리다.


취준생들은 다 하는 자기분석과 직무분석의 기본 개념도 갖추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다. 왠만한 규모의 기업에는 징계기준이 다 있다. 이 사회는 위로 올라갈수록 아무렇게나 일해도 책임을 묻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책임의 무게는 위로 갈수록 무거워진다. CEO란 자신의 의사결정에 대한 최종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다. 자신이 결정한 일이 잘되면 자기탓, 잘못되면 남탓으로 돌리는 고도의 기술을 터득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너무 많다. 네루는 '세계사 편력'에서 정치인을 탁월하게 정의했다. 정치인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고도의 기술을 터득한 사람'이라고. 일하는 척하지 말고, 일을 해라. 문제를 말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해라. 정치인은 실행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정부는 그걸 실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정부는 문제가 생기면 진상규명이나 책임의 소재를 밝히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다. 국민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일이 잘 안되면 책임은 정부가 지는 것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른다. 그릇을 깨뜨리고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는 아이에게 네 잘못이라고 알려주는 일보다 더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