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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인터뷰 Jul 03. 2022


인생에서의 결정적인 일은 치밀한 계획보다는 우연히 일어날 때가 많은 것 같다. 2012년 경주의 모도리네라는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산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나도 게스트하우스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세계의 다양한 여행자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은 학생 때 꿈이었다. 2012년 11월부터 작은 정원이 있는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했다. 2013년 봄에 부산 영도 섬 최초로 외국인 대상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는 아침을 제공한다. 빵을 직접 구워 주기로 했다. 구례산 우리밀, 신안 토판염, 프랑스산 이스트, 유기농 설탕, 그리고 물만 넣은 순수한 빵을 구웠다. 홍성 풀무학교에서 빵을 만드는 지인이 게스트하우스로 찾아와 직접 우리 밀로 빵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해 3월부터 빵을 구웠는데, 만족할만한 빵이 나오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니 내가 생각하는 빵에 가까워졌다. 손님이 체크인한 날 저녁 8시쯤에 빵 만들기를 시작했다. 손반죽을 10~15분 정도 하고, 3~40분 숙성시키고, 다시 손반죽을 10~15분 하고, 빵의 모양을 잡고 3~40분 정도 숙성 시킨 후 빵을 구웠다. 180도 온도에서 20~25분 정도 구웠다. 그러면 맛있는 빵이 나왔다. 내가 만든 빵은 주식으로 먹는 빵, 즉 밥빵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구워보기도 했지만, 새벽 제빵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아무리 빨리 만들어도 반죽부터 굽기까지 2시간 30분 이상 걸리고, 뜨거운 빵을 식히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조식 시간 8시에 맞추기가 힘들었다.


내가 만든 빵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빵 때문에 생긴 단골 손님들도 있었다. 파는 빵은 속이 불편한데 내가 만든 빵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빵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료만 넣은 기본빵인데도 맛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칭찬을 들으니 더욱 열심히 빵을 만들고 싶어졌다. 4년 동안 정말 열심히 빵을 구웠다. 간혹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빵을 굽기 위해 저녁 8시에는 집으로 왔다. 빵 만드는 일은 그 당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그때 가장 자부심 넘치고 기뻤던 말은 한 중년의 독일인이 내 빵을 맛보더니, "어릴 적 할머니가 구워주던 빵과 똑같다!"고 한 말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손님이 올 때마다 한 덩어리 혹은 두 덩어리씩 4년 넘게 꾸준히 빵을 구웠다. 레시피대로만 하면 똑같은 빵을 만들 수 없다. 그날 그날의 온도와 습도 같은 환경 변수에 따라 빵의 맛과 상태가 미묘하게 바뀌기 때문이다. 빵을 잘 만들려면 빵 만드는 감각이 필요하다. 미묘한 환경 변수에 따라 반죽의 방법, 시간, 재료의 비율, 굽는 시간 등을 미세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1년쯤 빵을 구우니, 반죽의 촉감, 숙성시킬 때의 냄새만으로도 어떤 빵이 될 지 가늠할 수 있었다. 빵을 구울 때 한 줄기 냄새만 스쳐 지나가도 어떤 모양, 어떤 색깔, 어떤 맛이 빵이 될 지 알 수 있었다. 빵의 감각이 생긴 것이다.


같은 종류의 빵을 수없이 구웠지만, 똑같은 빵이 나온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빵을 굽고 나면 상태를 확인한다. 냄새, 부풀기, 색깔, 모양은 물론 맛도 조금씩 다르다. 음식 비즈니스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똑같은 맛의 음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일이라 들었다. 빵은 환경 변수에 무척 예민하게 반응하는 음식이다. 아무리 레시피를 똑같이 해도 공기의 상태, 온도, 습도, 소금의 굵기, 물 온도, 이스트의 상태, 밀가루의 상태(도정 후 보관 기간 등) 등에 따라  다른 빵이 나온다. 심지어 반죽할 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도 빵맛이 달라진다.(믿거나 말거나). 그때그때 감으로 물의 온도, 소금, 설탕, 이스트의 비율, 반죽 방법과 시간, 숙성 시간, 굽는 시간 등에 미세한 변화를 주며 보정을 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빵이 나온 적은 없다. 이러한 다양성이 핸드메이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도 집에서 만드는 빵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타인과 똑같은 삶을 살 수 없다. 변수가 많지 않은 빵도 그러할진데,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변수를 가늠할 수도 없는 삶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타인과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너무 애써서도 안 되고, 타인과 같은 삶이 될까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남들과 달라지기 위해서도,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서도 애쓸 필요가 없다. 어떤 삶이 될 것인지 불안해지지 말고 그냥 나답게 살면 된다. 인간의 진로란 표준화된 몇 개의 선택지가 아니라, 아무도 가늠할 없는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을 빵에 비유하면 표준화된 공장에서 만드는 빵이 될 것인지, 집에서 만드는 빵이 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진로 문제를 풀어가는 출발점 같다. 집이 힌트다. 우리는 공장이 아니라, 집에서 살고 있다. 아직까지는.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다. 감정을 빵에 빗대어 설명한 대목이 많다. 저자는 우리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개념으로서의 감정 같은 것은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 한다. 감정이 밀려온다는 표현은 틀렸다. 감정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춰 빵을 굽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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