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by 피라


어릴 적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커서 뭐 될래?"라는 질문 후, 돌아오는 대답을 듣고 즐거워했다. 당시 최고의 직업은 대통령이었다. 어린 시절 이웃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큰 꿈을 심어주기 위해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인 대통령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커서 대통령 되라는 말을 하곤 했다. "대통령감이다", "대통령되어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을 향한 크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일종의 덕담이었다. 그런 의중을 읽어서인지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직업이나 진로에 대한 정보나 구체적인 관심을 쏟기 어려운 시대에 막연하게 '잘 커서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말을 대통령이라는 단어에 담았던 것이다.


연봉이 높고 복리후생제도가 잘 되어 있지만, 자나 깨나 신경 쓰며 업무를 해야 하는 일, 칭찬과 보람보다는 해도 해도 안 된다는 자괴감과 비난을 들어야 하는 비정규직, 임시 계약직인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예전처럼 많지 않다. 간혹 대통령의 꿈을 말하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가 나서서 말릴지도 모른다. "그런 험한 일 하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 행복하게 살아가렴.. ."이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에게 커서 대통령 되라고 말하는 것은 아동 학대에 가깝다.


오직 자신을 위해 살고 싶은 사람은 대통령을 하면 안 된다. 공무원도 맞지 않다.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커야 한다. 공공성의 의미는 단순하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한 없이 이타적일 수는 없다. 대통령도 인간이라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100% 이타심만 가진 사람도, 100% 이기심만 가진 사람도 없다. 타인을 위한 마음과 자신을 위한 마음이 뒤섞인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이타심과 이기심을 양쪽에 올려 놓은 천칭이 조금이라도 이기심에 기울면 나중에 큰 차이가 생긴다. 필리핀의 이멜다와 아프리카의 슈바이처의 마음도 비슷할 지 모른다. 다만 아주 작은 차이로 인해 점점 기울어져 전혀 다른 삶이 된 것 아닐까?


중고등학교 시절 부모는 내가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나는 싫었다. 학생으로서 내가 봐왔던 선생님은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공부와 부모의 재산으로 학생들을 차별하고 학생들의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내가 봐 온 선생님이라는 직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삶 속에서 한 조각의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교사뿐 아니었다. 거의 모든 직업이 시시해 보였다. 기질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까에만 관심이 있었지, 어떤 직업을 가질까에는 관심도 없었다. 대학 4학년 때까지 한 번도 내가 취업을 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해류에 떠다니듯 세월의 바람을 타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해 보니, 뒤늦게 교사라는 직업은 정말 의미있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모든 비행기가 이륙한 뒤, 혼자 비행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을 자라는 아이들은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현실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교사라는 직업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사춘기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다. 네가 바라보는 현실, 네가 이해하는 현실 너머의 의미와 가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 지금 네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세상에는 네가 모르는 훌륭한 교사들도 많이 있으며, 훌륭한 교사란 학생에게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배우는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좋은 교사란 학생과 더불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인데, 그런 삶이 얼마나 가슴 설레고 행복한 삶일 수 있는지를 말해 주고 싶다. 중학교 시절 혹은 고등학교 시절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더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명의 친구가 있다. 중학교 시절 방학이면 매일 새벽에 함께 등산을 했던 친구. 정말 순하고 착했고, 공부를 잘 했던 그 친구의 아버지는 교사였다. 아버지는 아들이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고, 착한 아들은 결국 교대에 입학했지만, 자신은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없는 이기적인 인간이라며 자퇴하고 배추 장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던 친구. 이타적으로 살고 싶은데,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 정신병원에 가버린 친구. 그 친구에게 누구라도 "괜찮다. 괜찮다, 세상이 이렇게 된 건 네 잘못이 아니라며, 어떤 완벽한 사람도 이기심과 이타심을 함께 지니고 있다며, 삶이란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 이타심과 이기심을 끊임없이 마시고 뱉아내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라는 말을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20대의 나라도 빨리 깨달아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더라면. 누군가가 교사라는 직업의 본질에 대해 진실을 담아 이야기해 주었더라면 자신의 힘들었던 경험까지 녹여낸 정말 훌륭한 교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새끼 강아지처럼 여리고 착한 친구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숨만 쉬는 그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직업을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아서도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보아서도 안된다.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와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진로교육이 필요하다. 20대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중년과 장년에게도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 나이 들어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찾지 못해 최저임금 언저리에서 방황하는 성인뿐만 아니라, 모든 걸 이룬 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에게도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어떤 일인지 모르고, 자신의 이익,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인이 되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 공공 영역의 직업은 말할 것도 없고, 사적 영역의 직업도 마찬가지다.


그 직업을 가졌을 때 얻는 이익이 아니라, 그 직업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이해해서 일하는 태도를 배우고,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 지식과 기술은 일하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그런 지식과 기술을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할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직업인으로서 타인을 위해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지 자신의 적확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일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비즈니스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다. 도움을 받기 위해 치르는 댓가(가격)보다 도움이 적으면 가성비가 낮다고 여긴다. 최소한의 도움도 받지 못하면 사기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도움을 많이 줄수록 비즈니스는 성장한다. 성공하는 사업 원리는 이처럼 간단하다. 현실의 일이 간단치 않은 것은 이타심과 이기심이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의미있는 일이랍시고 큰 소리 치며, 사회적 관심을 받으며 일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기에 가까운 일들도 많다. 공공의 일이든 사적 비즈니스든 일의 원리는 간단하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직업 교육, 진로 교육은 이타심과 이기심의 상호작용에 대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좋은 직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다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선한 욕망을 찾아 키울 수 있는 힘을 필요하다. 다른 말로 비즈니스 혹은 정치라고 말한다. 또 다른 말로는 진로 교육이다. 그런 진로 교육은 내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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