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늘그막에 마당 있는 집에서 살게 되자 아버지는 2천원짜리 나무 젓가락 같은 동백 묘목을 사다 심었다. 아버지는 나무를 많이 남겼다. 20년 넘는 세월을 견딘 묘목은 3미터가 훌쩍 넘는 웅장한 동백 나무가 되었다.
아버지는 소설 속 이야기처럼 엄마가 죽자 곧 따라 죽었다. 엄마는 2017년 5월, 아버지는 2018년 3월에 돌아가셨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젊었을 때 둘은 자주 다퉜지만 노인이 되어서는 서로 잘 지냈다. 나도 그렇다.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별 대화 없이 그저 그렇게 지냈는데, 돌아가신 뒤에는 그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대화라 궁금한 것이 많아지긴 하지만 그 전보다 부모와 많은 대화를 한다.
나보다 나를 잘 알고 나보다 훨씬 나를 사랑하는 부모라는 존재의 죽음은 마음의 마당에 떨어진 동백 씨앗 같다. 해가 갈수록 세상을 떠난 그들의 삶과 죽음의 의미가 점점 자라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는 동백 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한 그루는 5살이고, 한 그루는 4살이다. 마음 속 동백은 때때로 꽃을 피워내는데 그때마다 바쁜 삶의 걸음을 멈추게 된다.
부모에 대한 고마움은 그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꽃을 피우는 것 같다. 나는 부모로부터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고 3때도 잠을 푹 자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공부뿐 아니다. 내 인생에 관한 무엇도 부추기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 엄마는 언제나 "네 인생이니까 네가 결정해라..."고 말했다. 인생을 글쓰기를 비유하면 나의 부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쓰도록 강요한 적이 없다.
어릴 적에는 길에 사람들이 많았다. 온갖 모습의 다양한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났고 구경 거리가 많았다. 가끔 우르르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호기심에 다가가면 둘러싼 군중 안에는 약장수가 있었다. 그 유명한 "애들은 가라"는 말을 하는 약장수. 나는 가라고 하면 가는 아이가 아니었다. 가는 척하며 어른들 허벅지 사이로 약 파는 장면을 훔쳐보곤 했다. 약장수는 약을 빨리 보여주지 않았다. 마케팅 수단으로 보이는 뱀, 고슴도치, 박쥐 같은 동물이나 칼, 바늘, 침 같은 것들로 몸을 찌르기도 하며 그들이 파는 약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기대감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드디어 때가 되면 약을 보여주는데, 회색빛 가루약이 많았다. 가루약을 물에 타서 먹으면 앞서 보여준 신기한 장면처럼 온갖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약장수의 서사다. 그 옛날의 약들이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지금쯤 글로벌 제약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약장수의 말이 끝나면 너도나도 약을 사는 이들이 많았다. 그 많던 약장수와 신비한 약들이 사라진 것을 보면 약이 별 효과가 없었지 싶다.
돌아가신 부모가 내게 약을 한 번도 팔지 않았다는 사실이 고맙다. 약장수의 만병통치약처럼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면 좋은 곳에 취업하면 장미빛 인생이 펼쳐지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은 부모가 고맙다. 그건 보통 큰 사랑이 아닌 것 같다. 부모는 상황과 조건이 아무리 바뀌어도 삶은 여전히 힘들거나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나 스스로 깨닫도록 하셨다.
삶의 진실은 서울대 입학, 삼성 취업 같은 것들이 우리 삶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갖은 변화를 겪으면서 외적 상황이 우리 삶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간다. 무엇이 우리 삶을 규정하는지 한 번 알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누구나 탐구의 과정을 통한 지극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삶의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대저택의 정원을 부러워하고 나도 그런 웅장한 정원을 갖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마음 속 동백 나무에 한 그릇의 물을 주는 일이 내 삶에 훨씬 나을 것 같다. 젓가락 같은 동백 나무가 세상에 뻗어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부터 정원인 마당은 없다. 오늘이라는 씨앗 하나, 작은 나무 한 그루부터 시작된다. 빨리 자라지 않음에 실망할 필요도 없다. 지금의 존재가 세상 의미의 모든 것이니까. 그걸 알아차리면 모든 생명은 저절로 자란다. 나중에 어떤 모습이 될까는 중요치 않다. 지금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게 삶의 의미다. 지금 의미 있다면 나중에도 의미 있다. 아니다. 지금의 의미도 중요치 않다. 오랫동안 몰랐던 의미를 하나둘 알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래서 살아 볼만 하다. 죽을 정도로 힘들어도 살아볼 만하다. 단지 살기만 해도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젊은 날 그토록 찾고 싶었던 삶의 이유가 꽃피는 날이 올 거다. 그러니 죽지 말고 살자. 그런 날을 견디며 살아냈다는 것, 단지 살아있다는 것처럼 장엄한 것도 없다. 그런 삶을 산 사람만이 죽음을 초연이 맞이할 거다. 그런 삶은 죽음조차도 장엄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장엄하다 여기는 것은 지독한 가난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으며 끝내 살아남았고 때가 되어 숨을 멈추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세상에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많다. 가난한 자는 자신보다 더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사실을 삶으로 가르쳐준 내 부모가 고맙다. 죽음 앞에서 조바심 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떨어지기를 두려워하면 꽃을 피울 수 없다. 동백 떨어진 자리 위로 또 동백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