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나 레빈

by 피라

2022년 6월 18일은 한국 피아노계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2004년생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 우승이라는 대단한 일을 이루었다. 반 클라이번(1934.7.12~2013.2.27)은 1934년 7월 12일 미국 루지애나주 슈리포트(Shreveport, Louisiana)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텍사스주로 이주해 킬고어(Kilgore)에서 자랐다. 반 클라이번은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로지나 레빈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로지나 레빈(1880.03.29~1976.11.9)은 우크라이나 키예프(키이우)에서 태어나 1882년에 모스크바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로지나는 피아니스트와 조셉 레빈과 결혼했다. 로지나 레빈과 조셉 레빈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1918년 1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로지나 레빈은 39살이 되던 1919년에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했다. 1924년 줄리어드 음대가 세워지면서 남편 조셉 레빈은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로지나 레빈은 남편 곁에서 피아노 레슨을 도와주었다. 두 사람의 가르치는 스타일을 단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있는데 "She verbalized, he digitalized"다. 로지나는 말로 설명했고 조셉은 손가락으로 직접 연주하여 보여주었다는 얘기다. 로지나 레빈은 1925년부터 1976년까지 50년 동안 줄리어드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로지나 레빈의 교육자로서의 명성은 남편 조셉이 심장마비를 죽은 이후 64세의 나이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피아노 음악, 2001.11.)


반 클라이번이라는 이름의 텍사스 출신 미국인이 모스코바에서 열린 1958년 제 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만장 일치로 우승하자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음악인들은 열광했다. 1974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를 한 21살 청년 정명훈을 위해 정부에서 대대적 카퍼레이드를 한 것을 보더라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얼마나 대단한 대회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의 영웅이 된 반 클라이번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로지나 레빈이다. 로지나 레빈은 세계적 피아니스트를 길러냈다. 로지나 레빈의 교수법으로 피아노를 배운 대표적 한국인은 백건우, 한동일, 윤기선 등이 있다.


마담 레빈이라고 불린 로지나 레빈이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한 말이 있다. "나답게" 연주하라는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Play what you are"이라고 말하며 남을 연주하지 말고, 너 자신을 연주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로지나 레빈은 어떤 연주도 어떤 피아니스트도 똑같지 않다며 각자의 개성에 맞는 세상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피아니스트를 키워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여겼다.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는 일과 같다고 했다.(윤기선 교수의 제자 송지혜 박사의 유튜브에서 발췌)


독립운동가 윤치호의 아들이며 줄리어드의 로지나 레빈으로부터 피아노를 배운 한국 1세대 피아니스트인 윤기선 교수가 하루는 제자에게 "지성과 감성 중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했다 한다. 그는 감성(음악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감성은 제멋대로 되기 마련이다. 음악은 이성과 지성이라는 틀이 잡혀 있어야 비로서 정확한 연주가 청중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하며 줄리어드에서 그의 스승 레지나 레빈이 알려준 말이라고 했다 한다.(음악 춘추, 2014. 01.) 마담 레빈은 개성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특이한 것, 변덕스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자의식이 과도한 상태에서 드러나는 개성이 아닌 기본에 충실하지만 그때그때 자발적으로 드러나는 개성에 따라 달라지는 연주를 지향했다 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우승 소감에서 "산에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말해서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다. 이 말 속에 임윤찬은 기교에 충실한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자신답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는 단서가 들어있다. 나다운 연주를 강조했던 로지나 레빈의 제자 반 클라이번은 당연히 '나다운' 연주를 했을테고,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나다운' 연주였을 테다. '나다움'을 보여주었던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쿵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 참가하는 피아니스트만 나다움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다움'은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삶에서도 필요하다. 나답게 생각하고, 나답게 말하고, 나답게 행동하는 것, 나답게 공부하고, 나답게 일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어떤 것이 나다운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나다워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피아노 하나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방법과 이론이 있듯 삶도 그러하다. 자신만의 진로를 찾으며 나답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문제는 나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마다의 상황과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나의 감정과 생각대로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일까?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나다운 선택을 하며,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로지나 레빈의 가르침이 도움될 것 같다. 그녀가 말하는 나다움이란 충실한 기본 위에서 자연스럽게 개성이 발현되는 상태가 바람직한 나다운 상태이다.


로지나 레빈이 말한 이성과 지성의 틀, 충실한 기본을 진로와 삶의 버전에서 바라보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세상의 다양한 가치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배우는 태도, 싫고 좋고를 떠나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는 태도가 기본에 충실한 태도 아닐까? 기본에 충실한 사람이 '나다운'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고,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로지나 레빈이 제자들에게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나다운 삶' 아니었을까? 지성이 바탕된 기본을 갖추기 위해 나의 일부를 포기하는 선택이 나다움을 향한 길이다. 지성은 길을 만드는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고, 감성은 그렇게 만든 길 위에서 나답게 걷는 법을 알려준다. 진정으로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나다움을 포기해야 한다. 18살 청년을 유혹하는 도시의 온갖 재미에 등돌리고 산 속으로 가고 싶다는 말처럼 지성의 힘으로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나답게 살 수 있다. 흑과 백의 건반처럼 타인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 자신의 위한 욕망과 자신의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욕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의 기본기를 갖출 수 있다. 기본기를 갖춰야 나답게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욕망을 다룰 줄 아는 사람만이 진짜 욕망을 발견한다. 진짜 욕망을 발견한 사람은 자신답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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