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골

by 피라



꿈을 꿨다. 꿈에 비동골이라는 곳에 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오지 경북 봉화. 봉화읍에서 차로 30분 넘게 달리면 소천면 분천리가 나온다. 비가 오면 큰 개울에 물이 넘친다고 해서 분천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분천역'이라는 현판이 걸린 동화속 앙증맞은 점빵같은 건물을 지나 10분을 더 달리면 비동골이 나온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곳이다. 그 비동골에 갔다. 비동골은 오지 중의 오지다. 어찌나 오지인지 꿈 속에서만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20년 만에.




30대 초반의 꿈은 스콧니어링처럼 사는 것이었다.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정착지를 찾아 다녔다. 그 중의 하나가 비동골이었다. 그때 우연히 '비동골 김초시'라는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서울 살던 젊은 부부가 오지로 귀농해서 사는 이야기를 간간이 올려둔 사이트였다. 그곳에 가고 싶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쉬엄쉬엄 차를 몰았다. 비동골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없는 암흑천지 산속에서 자칫하면 개울 아래 야트막한 낭떠러지로 추락할 것 같았다. 길을 잃어 오도가도 못하고 있을 때 김초시가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왔다.




그 뒤로 김초시를 만나러 비동골에 몇 번 더 갔다. 비동골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간의 문명과 도시의 삶이 돈 받고 쓴 마케팅 글이 차곡차곡 쌓인 블로그처럼 여겨졌다. 가짜 말고 진짜를 찾고 싶었다. 가짜의 삶이 아니라 진짜의 삶을 살고 싶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시골과 도시를 구분하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고, 좋은 것과 싫은 것을 구분하고, 옳은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고,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못한 것을 구분하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감사하고 분노하던 세월들이 한 여름 밤의 꿈처럼 훌쩍 지나가 버렸다.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머리 속 전쟁만 치른 기분이다.




어렸을 적 아침 밥을 먹고 놀러 나갈 때, 엄마는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라"고 했다. 잘 산다는 건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 같다. 엄마의 마음 덕분인지 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는 아이였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아이부터 가장 못하는 아이, 허약한 아이부터 싸움을 잘하는 아이, 온갖 이상한 짓을 하는 아이부터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 믿는 아이까지 골고루 친했다. 다양한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일은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였다. 나를 가르친 건 다양한 생각과 모습의 친구들이었다. 첫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의 정체성은 다양성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구분하는 일이었다.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이것과 저것을 구분해서 선택과 배제를 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뽑을 지원자와 탈락시킬 지원자를 구분하고, 수습평가에서 입사 취소할 구성원을 찾아내고, 일을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아웃 소싱 시킬 직무와 그렇지 않은 직무를 구분하고, 목표 달성에 필요한 것을 선택하고 필요없는 것을 배제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나보다 인사 업무를 많이 한 사람들은 말했다. 인사병이라는 직업병이 있다고. 사람의 겉모습이나 그 사람에 관한 몇 가지 데이터만 보고 쉽게 판단하는 병,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일상에서도 짬뽕을 선택해야 하는 논리와 근거를 대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병이다. HR의 일은 형평성이 생명이라 의사 결정을 위한 객관적이고 합리적 기준 없이는 일을 진행할 수 없다. 그래서 현업 부서로부터 바보 멍청이라는 욕을 많이 들었다.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된 습관이 길러졌고, 그렇게 형성된 선택과 배제의 습관 위에서 생태 철학을 공부하고 환경 문제를 접하다 보니 세상을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게 된 것 같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며 속으로는 세상을 좋아요와 싫어요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내 돈줄이었던 취업 컨설팅에서는 그런 구분의 능력이 빛을 발했다. 이런 행동 안 되고, 이런 표현 안 되고, 이런 표정 안 되고, 이런 말 안 되고,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이렇게 하면 좋고.. 등등의 '좋아요와 싫어요'에 기반한 '되고와 안 되고'의 방식으로 학생에게 말해주면 학생들은 쉽게 이해했다며 좋아했다. 또한 취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내게 그런 일들은 점점 시시해졌고, 세상을 좋아요와 싫어요로 구분하는 태도도 시시해졌다.




어린 아이가 "좋아"와 "싫어"를 느끼고 표현함으로서 배움이 시작되듯, 좋아요와 싫어요의 구분은 배움과 성장에 꼭 필요하다. 하지만 구분을 통해 세상의 더 많은 가치를 알아가는 쪽으로 나아가야 된다. 구분을 통해 현재에 머문다거나, 앎과 통찰이 줄어드는 쪽으로 나아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옛날의 내가 비동골에 정착하지 않은 건 그때는 잘 몰랐지만, 마음 깊은 곳에 좋아요와 싫어요의 상태에만 머물고 싶지 않은 욕망이 있었던 탓일까? 좋아요와 싫어요 상태에 머물면 문제를 제기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좋아요와 싫어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배우고 성장하려면 좋아요와 싫어요를 넘어서야 한다. 대립하는 두 세계를 가로지르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눈을 비비고 여러 측면과 층위에서 좋아요와 싫어요를 바라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싫어요 속에서 좋아요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좋아요 속에서 싫어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제해결이란 발견의 과정이다. 최선의 삶이란 좋아요를 최대한 선택하고, 싫어요를 최대한 배제하는 삶이 아니라, 좋아요와 싫어요를 학급의 친구들이라 여기며 사이좋게 지내는 삶 같다. 사이 좋게 지낸다는 것은 그들에게 동화되거나 그들의 문제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싫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며 사이 좋게 지내는 법이다. 퇴직 후 새로운 삶을 꿈꿀 때 비동골 오지에 정착하지 않은 이유는 그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 밥 먹고 놀러 나가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고 싶다. 친구들과 다투기도 하면서 사이 좋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겠다. 친구와 다투면 혼자 다리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집으로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가 아니라 싫은 마음을 품고서도 놀이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아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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